1. 작가의 말

2. 리마에 내린 비

3. 사라지는 것들 남는 것들

4. 여자에 관한 몇 가지 이설 혹은 편견

5. 그 꽃 상여 그림자

6. 신기루을 찾아서

7. 머루 위를 뛰어가다

8. 겨울 동백 향기

9. 덧, 혹은 옷나무 피리

10. 즐믄 마을 기행

 

 

작가의 말

 

작가는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일반화 되어 있는 이 관행을 나는 무시하기로 합니다.

시집이나 소설의 말미에 작가와 가까운 비평가나 독자가 한 사람 쯤 끼워들어 작품의 안내와 해설을 맡아주는 일이 일반화 되면서 독자를 위해 문맥의 그 뒷편, 심층의 비밀에 대한 전문가로의 안내와 객관적 위상을 추인해 주는 평가의 그 친절한 작업이 의례적 편파성과 찬사 일변도의 속성으로 독자의 독서행위에 선입견이나 편견을 심어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싫어서입니다.

어차피 독서라는 것이 문자라는 매체를 통해 거기 처연하게 들어난 작가의 영혼에 독자 개개인의 각각 다른 인식과 감성이 잠시라도 직접 맞 부딪치는 독립된 교감이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기회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나 조금 해 버리자, 너무 많이는 말고, 그러나 솔직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들에게는 나름대로 일종 숙명적 선의식(先意識)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최근에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출생과 성장, 그를 둘러 싼 외부적 여건, 그의 개성에 따른 갈등의 수용 형태와 심도는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심층에 침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과수원 집 아들. 그 유년을 지배하던 바다 위에는 늘 어디로인가떠나는 돛배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돛배를 밀어가던 바람의 방향과 바람의 냄새, 그 무렵 바다 위 황혼의 색깔은 늘 나와 같이 있어 왔던 듯 싶습니다. 초여름의 과수원 울타리에서 찾아낸 산새 둥우리 속 작은 알껍질에 아로 새겨진 놀랍도록 아름답던 무늬의 기억들, 그때 밀려오던 울컥거리던 외로움. 혹은 치기에 찬 오만성. 여름이면 약속처럼 찾아오던 태풍과 거기 소멸과 죽음의 잔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곁을 스쳐가던 전쟁. 시신들 위를 날아다니던 파란빛의 파리떼들을 보면서 가슴 깊은 곳을 휘몰아 달려가던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바람의 정체에 대한 풀 길 없었던 의문들은 처음부터 나와 일체가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다 건너 가까운 곳에 소록도가 있었습니다. 그 갇힌 자들의 선택할 수 없는 철조망의 한계....그리고 6.25. 4.19. 5.16. 5.18.....거기에다가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별들을 지켜 보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서성거리고 있음을 너무 일찍 알았던 듯도 싶습니다.

출발지를 알 길 없는 바람의 방향과 색깔, 갇혀 있는 자들의 숙명, 죽음. 그런 것들이 30여년 나를 떠돌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요즘에 와서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 문자의 활동 영역 위축과 다층적 가치관의 혼재 앞에 소설이 해야할 일이 썩 많지도 않다는 서글픈 자각을 하면서, 30여년 늘 문학과 같이 있었지만 내게 있어 문학은 기껏 내가 자살하지 않을만큼의 자신에 대한 구원의 수준이었고, 그래서 나는 영원히 문학에 대한 아마추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자기 진단도 내리게 했습니다.

왜 사람은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출생으로 부터, 관습과 모든 관계들에서 부터, 제도와 상황으로 부터, 인과에서, 육체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 인식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습니다.

 

1964년 젊은 날의 처녀작 <하늘을 색칠하라>는 소록도라는 갇힌 공간 속, 한 젊은 화가의 영혼의 자유를 다룬 것이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갇힌 자의 한계 상황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예감이었을까요? 그림을 통해서라도 상징적 탈출을 시도하던 주인공의 좌절이 예견된 것이었다면 나 스스로 너무 일찍 허무의 냄새를 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시절 동생이 죽었고, 이듬해 5.16이 났고, 강의실을 피해 충청도 계룡산, 산 울음소리를 듣던 고독한 시간에 나는 철조망에 갇혀 있는 한 젊은 남자의 좌절과 집념을 그 처녀작에 투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몇해동안 햇빛을 볼 수 없었던 고려시대 노예들의 수직적 신분 상승의 꿈과 좌절을 다룬 장편 <高麗舞>를 출간하면서는 자유에 대해 꽤 시건방진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읍니다. 시간의 변이에 상관 없이 억압이 있는 곳에는 언제고 억압 받는 자들의 지표 아래를 흘러가는 지하수의 흐름같은 그 분출의 자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것을 쓰는 동안 그때 창밖으로 탱크가 지나 갔고, 내가 몸 담고 있던 학교의 제자 아이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다시 내 강의실에 돌아 오지 않고 증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내 영혼 속의 노예 만적에게 죽음을 뛰어 넘는 저항을 울면서 속삭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도피이고 위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굴곡의 정치 사회,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한때 무력하기 그지 없는 쓰는 일 자체가 구원은 커녕 고통과 굴욕이라는 심한 자괴심 앞에 10년을 쓰지 않고 지나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쪽 바닷가를 서성이며 소주만 마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툴게라도 쓰는 일 말고는 도무지 다른 일에는 더욱 더 무능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어차피 인간은 꿈꾸는 자유만이 유일하게 허락되어 있는 존재라고 웅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소설 열하일기>를 출간하면서 나는 다시 말했습니다. 집단이 아닌 개인, 각 개인의 심층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억압에서만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 한계들, 운명이나 삶의 유한성, 상충되는 내적 욕망과 갈등들 앞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과 그 좌절의 실체라도 확인해 보겠노라고...... 그때 나는 중국 돈황의 명사산 기슭, 막고굴 앞에서 부시도록 흰 사막의 햇빛을 보고 있었습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그 굴 주변 절벽에 촘촘한 수백개 동굴이 일천년의 세월을 공존하며 거기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엉뚱하게 200년전 한 시대를 자유를 염원하며 좌충우돌, 고독하게 살아간 박지원을 나는 다시 만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새를 위하여>에서 나는 날고 싶은, 그래서 <새>가 되고 싶은, 그러나 그 <날다>라는 단어가 지닌 원초적인 비극성 때문에 영원히 날 수 없는 허무를 확인하며 다시 비참해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꿈꾸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날 부시던 돈황의 사막, 흰 햇빛 속에서 출렁이던 신기루를 보면서 가시적 세계의 위축은 꿈을 통한 또 다른 세계의 확장으로만 보상받을 수 있슴을 예지하고 나서였을 것입니다.

철이 들면서 늘 느끼던 내 생래적 갈증과 어린시절부터 곧잘 가슴 깊은 곳을 휘저으며 달려가는 바람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를 알기 위해 몇 년간 지구 곳곳을 참 어지간히 싸돌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마사이 원주민 마을에서 킬리만자로의 산정을 황혼 속에서 올려다 보기도 했고, 아마존 밀림의 벌거벗은 인디오 마을에서 악어잡이도 했고, 몽골의 초원, 소똥으로 불을 지피며 주먹만큼한 새벽별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마구 휘젓고 다녔던 지구촌 곳곳에서도 그러나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 가슴 속을 휘달려가는 바람소리의 실체가 조금씩 확인되어 가면서 느낀 깨달음, 나의 유년과 내 동생과, 내 아버지와 어머니, 5월 어느날 증발하여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제자들, 긴 여정에 오른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랑하던 사람들, 혹은 역사, 생로병사의 여로,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흘러가는 것들이 이 지상의 공간 어디에서도 재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뒤 나는 꿈이 갖는 넓은 시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날 잉카의 사라져버린 문명의 흔적, 안데스 산맥 마추픽츄 정상에서 겨울 비를 맞으며 떠 올려 본 옛 잉키인들의 눈부신 투혼, 혹은 투탄카멘의 마스크 앞에서 그려 보았던 옛 이짚트인들의 영광에 대한 잠시의 꿈꾸기와도 그것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문학이 이 다원화의 시대, 변혁이나 선도, 오락적 기능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잠정적 결론이라면 잠시라도 우리에게 문학이 꿈의 공간으로라도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우주적 시간으로 따져 찰라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열정적 사랑이 금방 긴 그림자의 회한과 아픔으로의 귀결이라면,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영원히 부재하는 것이라면 그럴수록 나는 당분간이라도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 꿈의 끝자락에 걸린 신기루의 환영이 부서지면서 끝간 길 없는 죽음같은 허무의 공동에 추락한도 해도 그 신기루의 허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또 다른 차원의 허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숨막힐 것 같은 삶의 비의나 가슴 저미는 감동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로의 투사적 역할, 혹은 새로운 예술적 실험의 신선한 전위적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나의 글 쓰기에 대해서 아직은 묵묵히 지켜 보아주는 가족, 친구 들, 그리고 지금까지 곁에 남아 있어 주는 제자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소설가로 프로적 면모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는 이미 버렸겠지만 어설프더라도 순결한 아마추어로 내 글 쓰기가 그러나 여러분 곁에 꿈꾸기로 남아 있을 거라는 말씀은 드립니다.

1998년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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