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우 박영준문학상 수상 소감
2. 만우 박영준문학상 심사 경위
3. 속눈썹 한 개 뽑고 나서
4. 리마에 내린 비
5. 하노이, 흐리고 가끔 비
6. 암보셀리, 그 사마나의 새벽
7. 상사화 꽃 다 지고
8. 숨어있는 혀
9. 사라지는 것들, 남는 것들
10. 여자에 관한 몇 가지 이설, 혹은 편견
11. 겨울 동백 향기
12. 시실리에서
13. 만적
14. 해설-치유의 시학

 

 

문학상 수상 소감

 

......몇 줄, ‘고려사절요’의 행간에서 순치되지 않는 영혼을 이 불모의 세월 속에 잠시 공유하고 싶었던 내 꿈의 그림자 한 자락이 내 책장에 40여년 자리 잡고 있는 ‘그늘진 꽃밭’ 에 닿았을 것입니다......

                                     

                                                                                                                         유 금 호 


우선 제1회 만우 박영준 문학상을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다시 일깨워주신 유족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후보작품들 중에 제 장편소설 ‘만적’을 수상작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사실 이번 문학상 수상은 내게 너무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수상자로 확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던 시간에 나는 학교 연구실에서 중국 유학생들과 한국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온 그 학생들은 근대 한국소설은 쉽게 이해하면서도 李箱의 소설에 오면 난감해 합니다.

S.Freud의 ‘심층심리 이론’이나, 소설기법상 ‘의식의 흐름’을 머리로는 수긍하면서도 소설에서 작가의 메시지 부재라던가, 동적구조(動的構造)로의 양식에 대해서는 이론과 작품이 별개로 떠도는 모양입니다.

언어와 관습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Social realism’에 대한 문학적 관습이 그간 한국소설의 다양한 변화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 전화로 걸려온 여사무직원의 그 수상작 선정 통고를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 협회 사무총장 전화가 다시 걸려와 내 장편소설 ‘만적’1.2권이 제1회 만우 박영준 문학상 수상작으로 공식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연히 눈이 책장으로 갔고, 낡은 책들 사이에 박영준 선생의 단편집 초간본 ‘그늘진 꽃밭’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대학시절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고 다니다가 빛바랜 표지의 그 책을 샀고, 여러 번 책장 정리를 하면서 많은 책을 버렸는데도 40여년 그 낡은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박영준 선생님을 생전에 뵈올 수 있는 인연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뿐 아니라 졸업하던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던 ‘하늘을 색칠하라’를 심사해 주신 황순원 선생님과 최정희 선생님을 직접 뵌 것도 소설이 당선되고 10년이나 흐른 후였으니까요. 지방대학생이었던 내게는 선생님들을 직접 뵈올 용기나 기회도 없었지만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그 분들을 직접 대면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분들의 작품을 읽고 어쩌다 활자화된 그 분들 일화를 읽는 것으로 만족했던 셈이지요.   

 

 40여년 내 책장 속에 꽂혀있는 ‘그늘진 꽃밭’의 작가 이름으로 마련된 첫 문학상을 내가 받게 된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1934년 "모범경작생"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신 선생님이 그 후 그늘진 꽃밭", ‘목화씨 뿌릴 때" 등의 소설로 가난한 농촌과 도시 소시민의 애환을 통해 인간이 가진 고독과 윤리의 문제에 깊이 천착, 한국 현대소설의 기틀 한 쪽을 놓아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때 언론계에 잠시 계시기도 했고, 6.25때 인민군에게 납북 당해가다가 탈출하신 일, 그 후  종군작가단(從軍作家團)에서 활약하신 일 이외에는 예술원 회원으로, 대학 교수로 고고하게 살아오신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잠시 언론계 생활 이외에는 대학에서 학생들과 학구적인 삶을 살아오시면서, 문학단체에 대한 관심도, 문학을 앞세운 외부적인 일들에도 초연하게 문학을 지켜 오신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상을 받는 제 자신 많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수상작품인 만적은 고려사절요에 몇 줄 기록된 노비 만적의 실패한 쿠테타가 그 소재입니다.

高麗史節要 14券 神宗靖孝大王 元年에 기록된

<....私 萬積, 味助伊, 延福, 成福, 小三, 孝三 等 六人, 樵于北山, 招集公私奴隷, 謀曰: "國家,自庚癸以來, 朱紫多起於賤隷, 將相 寧有種乎, 時來則亦可爲也, 吾輩安能勞筋苦骨, 困於 楚之下, 諸奴皆然之 乃剪黃紙數千, 皆鈒丁字爲識, 約以甲寅, 聚興國寺....."..... 以告忠憲, 逐捕萬積等百與人, 投之江.....>


이 몇 줄로 외로운 사내, 만적(萬積)을 만나면서, 고뇌와 분노, 그의 침묵의 행간에서 나는 뜻밖에도 오늘의 우리들 얼굴을 보았습니다.

 

800여년 전, 1198년 초여름, 바윗돌에 묶여 예성강 강바닥에 가라앉은 만적의 생애를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러한 시도로 컴퓨터 앞에 앉지도 않았습니다.

신종(神宗)원년, 최충헌(崔忠獻)의 집권시절, 만적의 저항은 100여명의 수장(水葬)으로 끝난  패배의 역사, 한 페이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적의 영혼에 자리했던 그 원초적 자유에 대한 갈망, 세월과 상관없이 순치되지 않는 생명력과 조우하는 동안, 나는 계속 나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어떤 조건에서도 인간의 자유에 대한 꿈은 지하수나 용암 같은 것이어서 깊은 곳으로 흐르고 흐르다가 한 순간 지표로 솟아오릅니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란 주어진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끝없는 일탈의 시도와 좌절, 그러나 또다시 도전을 꿈꾸는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소설 역시 바로 그 꿈꾸기의 한 방법일 것입니다.

 

로마의 콜로세움, 무너져 내린 돌 담 사이에서도, 몽골 초원의 보랏빛 지츠꽃 사이에서도, 치첸이사, 저물어 가는 마야문명 석주(石柱)사이에서도, 일요일이면 가끔 찾는 가까운 작은 절, 선법사(善法寺), 석간수 곁, 보물 981호의 1,000년 넘은 마애불(磨崖佛) 곁에서도 나는 만적의 냄새를 자주 맡으니까요.


몇 줄, ‘고려사절요’의 그 행간에서 순치되지 않는 영혼을 이 불모의 세월 속에 잠시 공유하고 싶었던 셈입니다. 그러한 내 꿈의 그림자 한 자락이 내 책장에 40여년 자리 잡고 있는 ‘그늘진 꽃밭’ 에 닿았을 것입니다.


치열하게 문학을 지켜온 선배, 동료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 분들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대신 받은 것 같은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깨끗하고 고고하게 지켜 오신 박영준 선생님의 그 문학 정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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