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의 말
2. 팽형
3. 광대놀이
4. 사사
5. 이국의 빗소리
6. 열하일기
7. 붉은빛 황혼

 

<열하일기>

  작가의 말 - 연암선생께 드림

 

연암 선생.

선생께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1737년이라면 금년으로 해서 255년 전이고, 세상을 떠난 해가 1805년 전. 나하고는 이승의 길목에서 옷깃을 스칠 만큼의 공유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년이라는 시간의 시차하고는 상관없이 나는 상당한 기간을 선생 곁에서 서성였습니다. 당시의 삶이나 효용론적 문학관이 내 개인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까지 확인하면서도 나는 당신을 떠날 수가 없었고, 나는 당신에게서 뻗쳐 나오는 흡인력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곰곰 따져 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얼마 전 여름, 중국 돈황의 황막한 모래벌판에 서서 보통 때 지독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내 체질인데도, 지나치게 건조한 그곳 공기 속에서는 땀이 흘러나올 사이 없이 증발된다는 사실을 알고 문득 아연했습니다.

그곳 돈황, 막고굴 절벽의 수많은 불교 유적들이 1000년 세월의 시차를 함께 안고도 아무런 배타감 없이 같은 공간에 공존함을 또 보았습니다.

그때 아, 하고 내게 와 닿았던 깨달음, 100년의 시차라든가 삶의 표피가 문제가 아니라, 연암 선생 당신이 지녔던 그 끝없는 자유에 대한 의지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신의 삶과 문학이 적응보다는 도전이었고, 모방보다는 창조였고, 전체보다는 개성, 수용보다는 개혁이었음에, 그 뿌리 쪽에 깃들인 저 끝없는 본질과 실체의 추구, 자기 확인의 고독한 사유가 시간과 공간하고는 상관없이 내 가슴속을 흐르는 강물의 뿌리와 같은 것임을 알아낸 것입니다.

철저한 자유의지와 처절할 만큼의 자기확인에 대한 몸부림은 당신이 시정 잡배들과 술 주정을 할 때도, 되어먹지 못한 위선적 유학자들을 질타할 때도, 연암 협곡에서 손수 돼지 교미를 붙이고 있을 때도, 중국의 밤 그 이국적 정취 속에서 밥그릇 가득 독한 술을 받아 막걸리 마시듯 들이킬 때도, 희끗한 머리로 지방 수령을 나가 동헌에 앉아 모처럼 큰기침을 해 보았을 때도, 늘 공통적으로 당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암 선생.

당신은 철저한 자유 의지의 인물이었습니다.

공맹의 화석화 된 글귀가 아니라 살아있는 당신의 사상, 당신의 삶을 살고 싶어했고, 당신의 육화된 삶에 대한 관찰과 인식을 표현하고 싶어했습니다.

더러 풍자를 통해, 때로는 직접 행동으로 힘에 부치는 것을 알면서도 거대한 위선의 바윗돌들에 스스로를 돈키호테처럼 부딪쳐가며, 그래서 상처입고 질시 받아가면서, 그러나 당신은 철저히 당신의 자유 의지 속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연암 선생.

200여 년 시차에도 상관없이 이 현재적 공간에서 내가 당신을 만나고, 더러 그럴 듯한 술국집에 마주앉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생사도 훨훨 넘고, 경전도 훌훌 넘는 당신의 스님 친구 무불이나, 오직 순수 그 하나만으로 잠시나마 우리 곁에서 원시적인 사랑을 꿈꾸게 해준 여인 사사 역시 당신과 어울리면서 스칠 수 있었던 귀중한 인연입니다.

어차피 문학을 한다는 행위가 안주를 거부하는 지향의 몸짓에 관련되어 있다면, 나는 연암 선생, 당신을 만나 꿈꾸는 자유를 향유하는 잠시의 행운을 가집니다.

이제 연암 선생,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시골 시냇가에서 혼자 담배를 태워 물거나, 더러 혼자 소주병 하나를 비우고 싶은 밤늦은 시간 같은 때,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긴 겨울밤 열차 같은 데서도 100여 년의 시차가 의미 없었던 것같이 당신은 더러 내 곁에 불쑥 그렇게 와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나의 생활과 삶, 문학조차도 시시해져 못 견뎌 할 때, 당신은 무불 스님과 사사를 앞뒤로 세우고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송엽주 한 병을 흔들어 보이며 내게 또 다른 꿈꾸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리라 믿습니다.

연암 선생.

당신을 만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애의 귀중한 행운이었습니다.

1992년 여름

閑?室에서 兪 金 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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