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의 말
2. 불꽃놀이
3. 겨울바람 그림자
4. 신기루를 위하여
5. 내 영혼 속, 키위새 한마리

 

<내 사랑 풍장>

  작가의 말

 

 

<내 사랑, 風葬>의 디스켓을 출판사에 넘기고 돌아오면서 올려다 본 하늘 색깔이 몹시 어두웠습니다.

 

치기어린 내 젊은 날의 청춘과 사랑, 그 고뇌의 편린 한 조각을 떠나 보냈다는 허전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허전함과 후련함, 이제 막 1막이 내린 연극 무대에서 역할을 끝내고 퇴장하는 단역 배우의 어깨에 묻은 그림자 한 자락- 그런 기분의 쓸쓸함이었겠지요.


어떤 경우에도 지난 세월에 대한 가정은 무의미한 것을 압니다. 개인적 삶의 질곡이나, 한 시대의 명암과는 상관없이 태양은 늘 떠올라 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 사랑, 風葬>을 내 손에서 떠나 보내면서 한때의 죽음 같은 열정과 고독, 어두웠던 한 시대에 대한 작가로의 부채감에서 진실로 자유로워졌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전히 결론은 부정적입니다.


얼마 전 한국소설문학상 시상식, 수상소감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는 무엇이나 쓸 수 있지만 결국 자기가 쓸 수 있는 세계만을 쓰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무한대의 상상력 속에 작가를 놓아둔다 해도 세월이 흘러 확인해 보면 자기 초상화 앞에 되돌아 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 당황해 하는 존재가 작가들이 아닐까 그 생각을 다시 합니다.


어린 시절, 첫 서리 내리기 시작한 과수원 배 밭에 피어 있는 배꽃을 보았습니다.


낙엽이 시작되던 계절, 그 가을 배꽃의 처연한 아름다움. 여름 태풍이 잎과 줄기마저 할퀴고 가 버린 후, 내년에 피어야 할 꽃눈이 그 가을, 서럽게 피고 있었던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보았던 셈입니다.


그 뿐인가요. 전쟁 중이던 그 무렵에는 학교 가는 뚝 길 위,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도 자주 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해질녘, 그 당시 유일한 장난감이었던 탄피를 줍겠다는 욕심에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가 동네 아저씨의 썩어가던 입 속에서, 나는 그때 허옇게 꾸물대던 수십, 수백 마리 구더기들과 그 위를 금속성의 파란빛으로 떠돌고 있던 파리 떼를 보았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시체는 무섭지 않았는데, 왜 그 시체의 입 안, 밥알처럼 가득 차 있던 구더기와 파리 떼가 그렇게도 무서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친구들과 가족들이 예고 없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의 자각, 제자들이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산화해 가던 한 시대의 어두움 한켠, 무기력하게 먹어 가는 나이의 의미, 그 긴 밤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서툰 글쓰기 뿐이라는 것도 자각해 갔습니다.


꿈꾸는 자유이외에 허락된 게 없다는 것이 한동안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상상력과 언어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예정된 곤혹감과 허무를 수용하는 동안 흰 머리칼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살아왔던 날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짧다는 인식 앞에 드디어 나는 육신과 영혼의 흔적, 사랑과 고뇌, 청춘의 자화상까지도 비바람 속에 흩날려 버리는, 무화(無化), 그 풍장(風葬)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또 하나의 슬픈 꿈꾸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 내 생애 속,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가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난 배 밭, 그 폐허의 공간 속을 응시하던 아버지, 당신의 입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꿈꾸는 자의 자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어느 여자 보다 어머니, 당신이 멋진 여자였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삶이 따뜻할 수도 있다는 믿음 속에, 괜찮은 드라마를 위해 밤샘하는 아내, 김정수에게도, 착한 수지, 병우에게도 이런 자리, 내 깊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몇 사람, 문우들에게도, 거기에 바닷가에서 맨 날 소주 마시는 내 게으름을 환기시켜, 더러 피닉스의 죽음, 그 잿속에 살아 남은 깃털 몇 개를 추스리게 해주는 제자들에게도 이 자리, 고마움을 표합니다.


내 청춘의 방종과 사랑, 한 자락에 숨었던 비밀의 고해를 <내 사랑,風葬> 속에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순결한 청춘들의 덧없는 산화에 속수무책이었던 내 양식의 오래 묵은 비겁을 이렇게라도 나는 속죄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처럼 벗어날 길 없던 긴긴 날들의 회한과, 그 순백의 젊은 영혼들에 대한 내 슬픈 연민. 그래서 오늘 나는 조금 투명해진 기분입니다.


책상 앞에 다시 앉으면 또 다른 상처의 자화상을 마주하겠지만, 오늘 디스켓을 넘기고 돌아오는 한 세기의 마지막 겨울이 시작된 거리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책을 만들어 주신 `개미' 출판사의 최대순 사장과 직원 여러분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1999년 가을


                                                                                                                 금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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