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따’ 할아버지, 똠방 각하

                          

                                                                                              -최기인 형에 대한 스케치

                                         

 허허실실의 여유.

 소설가 최기인 형을 가까운 친구들은 ‘똠방’이라고 부른다.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운 사팔뜨기 눈 연기를 보여준 ‘신신애, 거기다 황신혜, 염규진이 주연했던 MBC 연속극 히트작 ‘똠방 각하’의 원작 소설가가 최기인 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어이, 똠방’그렇게 불리운다고 해서 그가 언짢아 할 수도 없는 일일 터이다. 

 지금도 작품 무대 가까운 변산 쪽에 ‘똠방 각하’ 상호를 붙인 가게가 여럿 있어서 혹시 동업관계냐고 농담을 던지면 늘 하듯 그는 허허 웃는다.

 그 무렵 국내 굴지의 제과 회사가 ‘똠방 각하’라는 이름의 과자를 출시하려다 ‘똠방’이 고개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판매를 중지한 적도 있을 만큼 그 대단했던 인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거기다 당시 컴퓨터 한글 자판에서 ‘똠’자가 찍혀지지 않아, ‘똠’을 찍으면 ‘똥’이 되는 바람에 컴퓨터 자판 이야기만 나오면 어김없이 ‘똠방 각하’가 지면을 오르내리는 통에 시골출장 중 표를 못 구해 발을 구르다, 매표구에서 ‘똠방 각하’ 작가라고 신분을 밝혔더니 없던 표가 나오더라는 본인의 고백도 있었고, 미국에 세미나 참석차 나갔다가 드라마 인기 덕에 교포들 사인 공세에 진땀을 흘렸다는 소문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일이니, 최기인 형과 ‘똠방 각하’는 본인이 싫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 있는 관계이다. 

 그런데 ‘똠방’이라는 낱말이 주는 ‘똠방거리다, 허둥대다..’등 낱말 뜻과 작가 최기인은 사실 정 반대 스타일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똠방대고 허둥거리기는커녕, 옆집에 불이 나서 자기 집 담을 넘어오고 있어도 아마

  ‘어허, 시방 저 불길이 거시기....뭐시냐? 우리 집으로 넘어오고 있는 게비여..’

 할 사람이 최기인 형이기 때문이다.

 출생과 유년의 배경이 십리 사방 자기 땅만 밟고 살만큼 여유있는 집안 도련님으로 성장한데다, 금융인으로 살아오면서 몸에 배인 예의랄까, 그런 것도 복합되었겠지만 천성이 그는 참 여유 있는 점잖은 조선조 선비다. 

 그래서 젊은 시절, 가족들과 야외에 나가 요리를 해 먹을 때도 최형에게는 요리나 설거지 분담이 면제되었다.

 바쁘게 친구들이 물을 떠오고, 고기를 구워도 그는 들고 온 북을 앞에 놓고 우선 ‘소리’부터 한번 하고 나서, 차려놓은 음식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당연시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딱 한번 ‘찌개’가 끓어 넘치는가 지켜봐 달랬다가 국물이 모두 넘쳐난 다음에야

 ‘그것이...멋이냐..넘어가는 것인지, 내가 어찌 알 수가 있겄능가?’

 한 뒤로는 아예 그런 쪽도 아예 최형에게는 열외가 되었다.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 나는 소설로, 그는 희곡으로 나란히 당선되어 지금까지 거의 40년 시간을 늘 가까운 거리에서 지내다보니 그 집 숟가락 수효도 대개는 짐작할 사이가 되어 있는데, 집이 가까웠을 때는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가족들과 같이 어울려 산에도 가고 해장국이나 보리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다가 그가

 ‘아침 해장 술 한 잔 해야 안 쓰겄능가?’

 하는 통에 아침부터 같이 마셔서 종일을 흐물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두워진 뒤, 마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최 형의 권에 따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해장술을 자주 마시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아침술 안 마시면 어떻겠느냐고 내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더니, 깜짝 놀라는 거였다. 본인은 실제 아침술이 질색인데, 내가 술을 좋아하니까, 내 생각을 해서 자기도 억지로 내키지 않은 술을 그 동안 마셔왔다는 거였다.

 그는 그 만큼 늘 상대방부터 배려하는 그런 대인 풍모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문단에서나, 금융인으로서도 그는 늘 타인부터 배려하는 그런 성품으로 지내와서 주변에 늘 후배들이 많다.   

 흰 머리칼 하나도 없이.

 이제 최기인 형도 며느리에 사위, 손자 손녀가 있는 할아버지다.

 그리고 실제 생애 대부분을 몸담았던 금융계에서 정년을 해서 느긋하게 독서와 창작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자제들도 다 독립을 했고, 집까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옮기고 나서, 여유자적 직장에 쫓겨 마음대로 쏟아 붓지 못했던 전업작가로의 삶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최기인 형을 처음 보는 사람은 도무지 나이 짐작을 못하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 머리칼이 오래 전 서리가 내렸거나, 아예 훌러덩 벗겨져 있는데, 유독 흰 머리칼 한 올 없이 숫많은 머리카락에다 팽팽한 피부가 도무지 나이 짐작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살 연상인 최형의 친 형님을 뵙고 나면 또 한번 놀라게 된다. 형님 역시 흰 머리칼이 한 올도 없는 것이다.

 90 장수한 최형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흰머리가 없었다고 ‘똠방’은 허허 웃는다. 그것도 큰복일 밖에. 

 몇 해전, 큰손녀인 ‘아리따’가 네 댓살 되었었나, 친구들 모여 있는 곳에 ‘아리따’를 데려온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친구니까, 다른 친구들에게 당연하게 ‘할아버지’라고 호칭을 하는데, 유독 내게 이 ‘아리따’가 아저씨라고 불러서 아주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후 1년인가 지나서 최형이 소설집 ‘까치소리’로 ‘조연현 문학상’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다시 물었더니 제 할아버지 눈치를 보고 나서 내게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였다. 오호, 통재라... 

 그러나 소설가에게 나이라는 것은 정말 ‘숫자’뿐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최형에게 있어서는 이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여유가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과거 소설에서 느껴지는 다른 작가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향에 대한 탐색이나, 그의 유년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고향 쪽 인물에 대한 놀라운 관찰력과 그 능청스러운 풍자적 접근의 소설세계가 이제야말로 더욱 개성있게 펼쳐질 것을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다.

 대단한 메모광.

 내가 알기로 소설가들 중 최기인 형만큼의 메모광이 없지 싶다.

 같이 외국 여행을 가서도 그는 끊임없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을 메모하고, 녹음한다.

 80년대 중반 중국 여행을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옌벤에서 종이에 적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들리는 소리, 기억해야 될 것들을 한도 없이 녹음하더니. 테이프가 떨어졌다. 아무 곳에서라도 살 수 있으리라 가게를 찾았는데,

 ‘이거 말씀입네까?’

 옌벤 아가씨는 노래가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를 내밀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었다. 빈 테이프에 직접 녹음을 한다는 개념조차 그때 그곳에는 없었다.

 다음 행선지가 베이징이어서 그때까지 참으라고 했는데, 대도시에서도 빈 테이프는 없었고, 최형은 둔황까지의 긴 여정 동안 국내에서 테이프를 여유있게 가져가지 못한 것을 여러 번 후회했었다. 

 그의 이런 철저함이 그의 소설의 커다란 강점인 생동감 있는 현장감을 줄 것이다.   서울 가락시장 안에 있는 농협 책임자로 있으면서, 생동하는 시장 안의 거칠고 투박한 삶에 대한 그의 이러한 세심한 관찰력의 결과로 장편소설 ‘가락시장의 밤’상하권을 쓸 수 있었을 것이고, 잘 알려진 ‘똠방 각하’의 후속편인 제2. 제3의 ‘서울 똠방’의 탄생도 다른 작가와는 구별되는 관찰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문학 장르와 다르게 소설이 삶의 구체성을 요구하고, 그 구체성에 대한 제시가 상상력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최기인형의 이 철저한 사물에 대한 관찰태도는 동업자들의 부러움이다. ‘똠방 각하’ 에 등장하는 평범해 보이면서도 각자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 강렬한 캐릭터의 형상화가 다른 작가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느긋한 시간 여유 속에서 작가로써 가장 활발한 창작 생활이 가능해진 만큼  한국소설사에 큰 족적의 뛰어난 소설 작품들이 계속 탄생될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의 소설 저 안쪽 깊이 숨아 있는 근원적 고향에 대한 탐색과 채만식을 뛰어넘는 그의 독특하고 여유로운 풍자와 세심한 관찰력들이 만들어 낼 최기인의 새로운 소설들에 대한 기대는 그를 알고 있는 동업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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