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존의 꿈과 근원적 허무의 확인

 

                                                                    -김선주의 송자소전(宋子素傳)의 문학적 성과


1.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설로 다루는 소설가는 두 가지 상충된 여건 앞에 서게 된다.

역사적 사실(fact)과 상상력의 충돌이 그것이다.

 사료가 풍부하면 작가의 창조성이 그만큼 제한되고, 이 상상력의 제한은 자칫 작가의 노고를 소설 이전, 역사기술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료를 무시한 상상력의 확대는 역사 왜곡의 우(憂)를 범하게 된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일단 제동을 건다. 조광조?이황?이이?김장생과 함께 조선 유학의 오현(五賢)의 한 사람. 더구나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모셔져 송자(宋子) 칭송을 받는 역사적 인물의 소설화는 작가에게 그만큼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짐작이 된다.


 역사소설은 과거의 역사와 현재가 긴밀한 관련을 지어야함은 물론, 이를 위해 현대의 이념을 역사적 소재에 단순히 투사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성립사’라는 관점 하에 과거를 묘사함으로써 현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좀더 풍부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G. Lukacs의 충고 역시 송시열을 소설적 대상으로 할 때 부담이 된다. 


 송시열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효종과 함께 북벌 의지를 다지지만 효종의 단명으로 그 꿈이 일단 꺾인다.

 그후 치열한 당쟁의 중심에서 노론의 대표 인물로 소론의 윤증과의 적대 관계 속에 계속 남인과의 당쟁의 와중 속, 중용과 유배를 되풀이하는 질곡의 생애를 살았던 극적 인물이다.

 거기에 말년, 장희빈의 아이를 세자로 삼으려는 숙종의 뜻에 거스르는 상소로 유배를 떠나고 결국 사약을 받는다. 그의 나이 여든 셋.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 역시 그가 죽는 날 밤, 학문을 상징하는 규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기록과 사약을 받은 그가 효종의 어찰을 내세워 목숨을 구걸하는 소인배였으며 억지로 먹인 사약을 반도 못 먹고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사료들 위에서 작가의 소설적 시선은 어떻게 심화되고 확대될 수 있을까.

성인이란 찬사와 시대 역행의 교조주의자라는 비난의 박제(剝製)된 인물을 통해 어떤 송시열을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는가가 작가 김선주에게 주어진 문학적 과제인 셈이다.

 


2.

 김선주의 ‘송자소전(宋子素傳)’을 완독하고 나면 주인공 송시열에게서 매우 확실한 이미지가 우선 떠오른다. 민족자존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그것이다.

 선조 40년에서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을 거쳐 숙종의 6대를 살아간 대학자로, 정치가로, 원로 대신으로의 그에 관련된 많은 사료들이 소설의 배경의 기능으로 물러서면서 ‘이상사회의 의미’로의 ‘中華’와 ‘北伐’을 전제로 한 민족 자존에 대한 꿈과 좌절을 겪는 한 인간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오는 것이다.

 ‘인통함원박부득이(刃痛含寃迫不得已)’의 정신, 분하고 원통함을 참고 품은 채 서둘러 그만 둘 수가 없다‘라는 주자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만이 아니라 임금에게까지 엄격한 수신을 주장하고 죽는 순간까지 일관되게 지키고 있는 송시열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병자호란의 민족적 수치와 이의 극복을 위한 북벌(北伐)의 꿈은 효종의 급서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지만 소설 결말까지의 행간에 깊숙하게 깔려 있다.


  시열과 이완은 종자도 거느리지 않은 채, 한가로운 놀이꾼처럼 뚝섬으로 나갔다. 그들은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서 잠실의 뽕밭을 지나 삼전도까지 걸어서 갔다. 삼전도에 이른 두 사람은 병자호란 때, 인조대왕이 저들의 말발굽 아래에서 군신의 맹세를 했던 자리에 멈추어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자리에는 청나라 황제의 송덕비가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타오르는 적개심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오랑캐들의 핍박에 의해서 원수의 송덕비를 우리들의 손으로 세워야했던 한심하고 기막힌 실정에 그들은 두 눈만 부릅뜬 채 할 말을 잊고 있었다.......

  “맹세코 이 치욕을 씻고야 말 것이오!”

  이완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시열을 돌아보며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물론이지요. 상감께서 우리 두 사람을 믿고 의지하시는 마음을 어찌 저버릴 수가 있겠소?”

  그들의 온 몸에서는 불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宋子素傳  pp111-112)

   

 송시열의 북벌을 전제로 한 민족자존의 정신은 ‘刃痛含寃迫不得已“라는 정신적 표지와 개인적인 가족상실의 상처로 독자들에게 필연적 설득력을 얻는다.

  효종과의 단독 면담 장면이나 이완과 함께 치욕의 삼전도 비 앞의 묘사와 대사 구사는 작가의 절제된 상상력 속에 강하게 부각된다.

  더구나 왕이 내린 가죽옷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 역시 빛나는 부분들이다.

  효종이 내린 가죽옷과 담비가죽으로 만든 초모를 사양하다가, 언제인가 북벌(北伐)의 날이 오는 날, 만주벌판 찬바람 속에서 입고 써야한다는 왕의 깊은 뜻을 알면서 느끼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나, 그 옷이 그가 83세, 제주도 유배 길의 추운 바닷바람 앞에서 입고 써야하는 아이러니의 배치는 인상적이다.


 

3.

 주인공 송시열은 그 당시로 보아 83세까지 긴 세월을 장수(長壽)한 인물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주변의 누군가와 계속 사별을 겪게 마련이고, 이 사별을 통해 생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바뀌기도 한다.

 주인공은 그의 장수한 세월만큼이나 유난히도 많은 이들과 사별의 아픔을 겪는다.

 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 마음으로 의지했던 스승과의 사별.

 가장 원대한 북벌의 꿈과 가능성을 보였던 효종의 마흔 한 살의 급서와 뒤이은 왕들의 서거.

 마음 의지했던 유계의 죽음, 윤선거의 죽음, 송준길의 죽음.....이렇게 친구들과의 계속된 사별을 통해 고독한 한 인간은 역사 속을 걸어나와 오늘의 독자 앞에 인간의 숙명과 한계의 문제를 제기하며 마주 선다.

 거기에 끝내 임종을 지켜주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들어야했던 아내의 죽음과 딸의 죽음.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었던 아끼던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송시열의 원대하던 꿈 역시 위축되고 퇴색되어간다. 제갈량(諸葛亮)의 중원 정벌의 꿈을 가로막은 유비의 죽음처럼 주인공 송시열의 웅대했던 이상과 의지는 효종의 급서 이후 계속되는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소인배들의 끝없는 권력다툼 속에 끝내 외롭게 좌절되고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마지막 그 역시 죽음을 맞는다.

 

  6월 8일,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시열은 쓰러지듯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한동안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있던 시열이 눈동    자를 희미하게 뜨면서 시간을 물었다.

 “이제 내 목숨이 다하려 하니, 후명을 받기 전에 죽을까 염려된다. 어찌 약이 이리 더디냐?”

 시열이 방문 쪽을 바라보며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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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갈색 사약 한 사발, 그리고 효종의 어찰과 시열의 봉서.

   그것은 정말 무심한 정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뜻은 어디에도 보이지않고, 다만 고즈넉이 상위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시열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가 살아온 날들이 한바탕의 꿈인 듯 아련하고 모든 것이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 같기만 했다.

   시열은 온힘을 다하여 일어나서, 한양을 향해서 네 번 큰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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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시열이 떨리는 두 손으로 약사발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시간이 걸렸지만 무척이나 태연한 얼굴로 한 방울의 약도 흘리지 않고 다 마셨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약사발을 상위에 올     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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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시열의 몸에 엷은 경련이 스치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모로 쓰러졌다. 시열의 몸이 잠시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차츰차츰 멈추었다. 두 눈은 여전히 부릅뜬 그대로였다.

   숙종 15년, 시열의 나이 여든 셋으로 1689년 6월 8일 아침이었다.

                                                         ( 앞책  pp281-285) 



독자들은 대단한 학자이며, 정치가이며, 스승이었던 송시열의 인간적 고뇌와 외로움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와 실존에 대해 잠시 숙연해진다.


 방대한 사료들을 뒤져낸 작가의 집념과 노고도 대단하지만 전체 서사구조 속에 적절하게 배분해 넣은 시문(詩文)들도 독자들의 정서를 환기시키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많은 인물 등장으로 서사맥락의 일부가 잠시 고지혈증 증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송시열이라는 역사 속 인물이 작가를 통해 살아나면서 한 인간의 꿈과 의지가 와해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한계와 허무를 성공적으로 드러내 준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미 박제(剝製)된 역사 속의 인물을 불러내어 그에게 움직이는 육신을 주고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일은 작가에게 주어진 권능이다.

  다시 살아난 미라에게 현재의 기준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는 일, 그것도 송시열만큼 사료가 많고 평가가 엇갈린 인물에게 확실한 선명한 생명력을 준 작가의 집념과 능력은 칭찬 받아도 무방하리라 싶다.

  좌절된 이상과 의지, 인간의 근원적 허무와 외로움을 안은 송시열에 대한 성공적 형상화로 해서 김선주는 충분히 작가적 능력을 내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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