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설을 읽고 또 그것을 쓰는가   

 

                                                                            - 문학의 집: 청소년 축제 (강연/2002.10.19)         

                                

1. 문학행위의 뿌리

 

 일생을 살아가면서 한 편의 시나 소설을 읽지 않는 다고 해서 시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이 문학 행위는 오래도록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대체 작품을 읽고 쓰는 이 행위가 우리들 삶에 왜 관계되어 있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마 여러분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커다랗고 보기 싫은 귀를 가진 임금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항상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는 임금님도 머리를 깎아야합니다. 임금님의 머리를 깎도록 선택된 이발사는 당시 절대 군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영광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임금님 머리를 손질하러 들어간 이발사는 살아서 그 궁중을 나오지 못합니다. 임금님 머리를 손질하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면서, 또한 사형 선고인 셈이지요.

 한 이발사가 임금님 머리를 손질하도록 선택됩니다.

 가족들과 다시 못 만날 이 이발사는 가족들과 울음으로 밤을 세우고, 이튿날 궁중에 들어가 임금님이 눌러 쓰고 있는 모자를 벗겨낸 순간, 이 이발사는 왜 자기선배들이 살아서 궁중을 나갈 수 없었는가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였지요.

 임금님과 이발사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깊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임금님 귀에 대한 비밀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그런 맹세를 수십 번했으리라는 짐작만은 우리가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 온 이발사가 혼자 알고 있는 비밀을 지키면서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이발사는 병이 들어 결국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고, 죽기 전 가슴속에 쌓인 임금님 귀에 대한 그 비밀을 대나무 숲에 가서 다 내뱉는다는 이야기에 얽혀있는 의미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만이 알고 있는 인생에 대한 비밀, 혹은 어떤 의미, 그것들을 밖으로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마음의 충동, 그 한 자락과 문학은 뿌리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혁명적이었던 천재 이상(李箱)이 아주 재미있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어서 불행하다>

 돼지는 먹을 것만 많으면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런 동물적인 욕망의 조건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영혼의 세계가 있습니다. 외부적인 조건들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영혼의 갈증, 결핍, 회의, 고독감- 결국 이러한 인식이 창조에 대한 욕망을 만들고, 자기 나름대로 세계와 인생에 대해서 발언하고 싶은 충동을 만들어 결국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일에, 혹은 그것을 읽는 일에 삶을 투자하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들 삶에서 느끼는 부족함과 상처들을 문학이라는 상상의 공간에서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위대한 ‘신곡(神曲)’을 쓴 단테를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가 9살 나이 첫눈에 자기 영혼을 빼앗겼던 소녀 베아트리체와 평범한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그의 위대한 문학 작품 ‘신곡’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바이런’같은 세계적인 낭만주의 시인이 다리를 절지 않았다면 그는 위대한 시인 대신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똑같이 고산 윤선도나 송강 정철이 정치적으로 상처입지 않았다면 그들의 위대한 시가 ‘오우가(五友歌)’나 ‘사미인곡(思美人曲)’은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문학은 우리들 삶에 있어서 그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이 되고, 때로는 현실적 절망을 극복하는 구원으로의 역할도 합니다.



2. 소설은 fiction이다.

 

 언어로 표현되는 여러 종류의 문학 양식 속에서도 소설은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구체적 문학 양식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끌어다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새롭게 창조해낸 세계입니다.

 이 문제를 E.M.Forster가 아주 명확하게 정리해 놓은 게 있습니다.

 우리들 삶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누구나 출생과 음식, 잠, 사랑,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밥 먹고, 잠자고, 사랑하고, 죽는 과정을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쓰는 소설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 테두리 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매우 중요한 소설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루에 8시간, 혹은 7시간, 6시간 그렇게 잡니다. 만약 6시간을 잔다고 했을 때 하루의 4분의 1을 자는데 소비하는 셈이지요. 누군가가 80세까지 산다고 하면 잠자는데에 무려 20년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그 소설 내용의 4분의 1을 잠자는 것으로 채우는 소설은 상상할 수가 없지요.

 이것은 실제의 삶이 소설 속에 그대로 ‘평행 이동’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주는 열쇠가 됩니다.

 소설의 세계는 실제적 삶에서 그 재료를 가져오지만 작가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전혀 다른 세계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세게는 현실과 닮아 있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설의 세계는 실제(fact)보다 더 많은 진실을 필요로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그 소설의 세계에 개연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즉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지요. 소설은 허구이지만 그 허구의 세계가 독자들에게 실제 이상의 감동으로 와 닿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사실성(reality)입니다.


 그래서 소설가는 자기가 그려 나가는 소설의 세계에 이 사실성을  주기 위해서 폭 넓은 체험과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간접 체험의 확대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대해서 많은 부분들은 우리는 앞서 경험하고 사색한 선배들의 책을 통해서 읽고, 들어서 그만큼 폭을 넓혀야 좋은 소설을 쓸 수가 있는 셈이지요.

 인생의 모든 부분이 모두 소설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 독서, 관찰들이 풍부할수록 그만큼 부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설가가 되려면 많이 읽고. 보고, 생각하고, 써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문학이 결국은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소설 역시 언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은 옮겨낼 수가 없겠지요.



3. 소설의 기본

 

 소설은 앞서 말한 대로 인생과 현실에서 그 재료들은 가져다가 언어를 통해서 일정한 형식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 알고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의 3요소라는 말을 쓰지요.

       *theme

       *plot     *character

                  *action

                  *setting

       *style


  위에서 보이는 대로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때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이 등장인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 속에서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해서 어떠한 사건들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소설가는 그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의도가 있습니다. 문학의 효용론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소설에서 이 주제라는 것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꼭 그렇게 작가가 자기 의도를 너무 드러내는 것을 피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소설은 우리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은 생략하고, 변형시켜야 하기 때문에 소설 속의 인물들 역시 뚜렷한 개성적 인물을 등장시켜야만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가령 ‘흥부전’에서 ‘흥부’와 ‘놀부’의 성격이 같다고 생각해 보세요. 놀부 집에 곡식을 얻으러 간 흥부에게 놀부가 ‘아이구, 동생 쌀을 한 가마니 가지고 가게나.’ 한다면 소설이 되지를 않겠지요.


 그런데 이 인물을 독자에게 드러내는 방법이 그 인물의 행동과 대사입니다.

 이때 어떤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 보이거나, 이야기 진행에 있어 그것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 일어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배경입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효과를 위해서 거기에 알 맞는 시간과 공간을 선택해야하고, 이때의 배경에도 물론 독자가 사실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 리얼리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항상 세심한 관찰력과 폭넓은 지식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가령 봄날의 꽃밭을 그리면서 가을에 피는 꽃 이름을 써 버린다거나, 한 마리 ‘거미’를 그려내면서 발이 여섯 개라고 써버렸다고 한다면 독자는 그 소설 속의 세계를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게 되겠지요.  


 그런데 다른 문학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소설 역시 아무리 극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문자로 옮겨지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똑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쓰는 사람의 개성적 문체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생기게 때문에 문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를 생각해 보세요. 같은 이야기라도 개성이 다른 작가가 이 소설을 썼다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입장에서는 우선 좋은 소설들을 많이 읽고, 어떤 식의 문체가 내가 쓰고자하는 이야기에 어울릴지를 생각해 보고, 직접 많이 써 보면서 자기의 개성적 문체를 이룩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길이로 분류할 때는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 꽁트(掌篇)로 나누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학생들은 우선 ‘꽁트’를 써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꽁트를 한자로 쓸 때 ‘掌篇’이라고 쓰는 것에서 짐작했겠지만 ‘꽁트’는 손바닥에 쓸 수 있을 만큼의 짧은 소설을 의미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선 접근하기 쉬울 것입니다.

 원고용지로 15내외, 여러분의 노트로 두 페이지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짧은 형식의 소설은 짧다는 것 외에 결말 부분에서 스토리를 반전시켜야한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기 쉬운 ‘모파상’의 ‘진주 목거리’의 결말을 생각해 보세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 올려 보면 쉽게 이해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같이 극히 짧으면서도 읽고 나면 그 안에 들어있는 가난한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독자들의 콧마루를 찡하게 합니다.


 우리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적절한 소재를 찾아 좋은 ‘꽁트’를 많이 써 보세요. 그런 다음에 단편소설을 써 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4. 새로운 실험소설들

 

  오늘날 많은 것이 바뀌고 새로움을 탐구해 가면서 소설 역시 새로운 실험적 소설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학생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으면 합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앙띠 로망(anti-roman)이 그 대표적 예가 될 것입니다.

 ‘반(反)소설’이라고 지칭되기도 하는 이 새로운 소설은 과거의 모든 소설 형식을 거부하고, 이야기 줄거리도 없고, 주인공도 없고, 물론 주제도 없는 사물에 대한 끝없는 묘사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그런가하면 한국에서도 명확한 스토리가 없는 수필체의 소설이 쓰여지기도 하고, 대사만으로 이어지는 희곡체의 소설이 발표되기도 합니다.

        

5. 마지막으로

 

 앞서 몇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소설은 우리들 인간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양식입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보고, 깊이 생각해보고, 본인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부분들을 독서를 통해 접 경험의 폭을 넓혀 가야 합니다. 소설은 상상력의 산물이어서 무엇이나 쓸 수 있지만 결국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밖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 역시 넓게 보면 소설의 자료입니다.

 많이 읽고, 생각해 보고, 써 보고 그러는 속에서 여러분 중에 앞으로 한국 문학, 좀 더 넓게 세계 문학을 이끌어나갈 훌륭한 소설가가 많이 나올 것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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