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00. 10>

사이버 공간에서 문학의 문제

 

                                                                       - 한민족 해외문학 세미나 토론 주제 (L.A 2000, 7.31)

 

한민족세계문학인 대회, 제2분과 주제였던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의 문제"에 대한 토론은 L.A 거주 문인들과 캐나다, 뉴욕, 시카코, 오하이오, 국내 에서 참여한 다수의 문인들이 참석, 급변하고 있는 오늘의 문화 현상 속에서 문인들의 좌표 설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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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정보가 공간 제약을 뛰어넘어, 공유되고 있는 시대에 '문학작품은 활자 책'과 동의어라는 고정관념을 이제 더 이상 고집할 수 없는 오늘의 문화현상에 참가 문인들은 대부분 동의를 나타내었다.

우리가 거부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는 사회 문화 현실로 사이버 공간 문학의 인정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문학 작품에 대한 우리의 관습, 작품 속에 담긴 내용만이 아니라, 활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행간의 여백이나 종이의 지질과 책의 질량까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관념의 파기가 쉽지는 않다는 의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인터넷상의 문학작품이나, 디지털 북 등에 대한 거부감으로, 문학은 오직 활자로 찍은 종이 책 속에만 갇혀 있어야한다는 요구는 이미 불가능한 세계가 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실제로 현재 제작 판매되고 있는 디지털 북은 일부 문인들의 무관심과 거부감 속에서도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벌써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북 출간은 우선 몇 가지 점에서 활자 책의 많은 한계를 긍정적 측면에서 극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와 출판사, 인쇄와 제본, 유통경로를 통한 소비자에게로 전달되는 과정이 저자에게서 출판사로, 그리고 곧 바로 같은 시간대에 빛의 속도로 세계 어느 곳의 독자에게든지 전달될 수 있는 디지털 북은 우선 출판과 유통에 따른 엄청난 비용의 절감과 시간 절약의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활자 책의 몇 분이 일의 염가로 독자는 서점을 왕복하고, 서가를 기웃거리는 수고를 덜 수가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특히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서는 모국어로 쓰인 문학 작품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의 시대를 맞는 셈이다. 사실 오랫동안 이질적 언어와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교포들로는 고국의 문학 작품을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책을 구하기 위해 자주 고국을 방문할 수도 없는 일이고, 현지에서 구해 읽는 문학 작품의 경우도 그 제한성 때문에 결국은 모국의 문학에서 단절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북이 일반화된다면 동 시간대에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간적 제한 없이 모국의 새로운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는 제작비의 절감으로 우선 독자에게 싼값으로 문학작품을 공급하는 외에도 작가에게 활자 책의 몇 곱 인세를 지불하여 독자와 작가의 양쪽에 경제적 이득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동안 출판사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재고품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이점 역시 출판사로는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활자 책이 도매상, 소매상 쪽으로 이동하는 물류비용과 팔리지 않는 책의 반품과 이를 보관 할 창고 임대의 부담에서 출판사가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제작 과정에서도 디지털 북의 경우는 적절한 장면에 음악이나, 음향 효과 같은 것을 삽입할 수도 있으며, 눈으로 보는 책에서 귀로 듣는 책의 제작 역시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의 독서 층 확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얼마전 출판사라는 중간 매개자를 생략한 작가와 독자의 직접적 거래가 시도되어, 상당한 효과를 얼마전 실지로 거둔 적도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작가와 독자가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이 일반화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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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이버 문학, 디지털 문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우선 책을 쓰는 사람들이나, 읽는 일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동안의 관습의 문제이다.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독자는 활자 책을 펴 들었을 때 느끼는 그 상쾌한 잉크 냄새, 혹은 그 무게나 촉감이 주는 포만감, 서재에 꽂아놓고 느끼는 그 소유에 대한 만족감, 장서로의 의미를 디지털 북은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하는 불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독자는 때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몇 구절을 읽고, 책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은 채 잠시 명상에 잠길 수도 있고, 때로는 전등을 끄고 촛불 아래서 천천히 시를 읽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새벽녘 잠이 깨어 어제 밤 읽던 페이지를 다시 찾아 몇 줄 계속해 읽을 수도 있고, 여행 중에, 또는 산보 중에도 잠시 벤치에 앉아 쉬면서, 읽고 있는 페이지 위에 밑줄을 그어가며 그 의미를 음미하고도 싶은 것이다.

그 동안 활자 책은 단순하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의 전달 매개체 이상의 독특한 문화 관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 왔다. 이러한 문화적 관습 자체를 무시하면서 화면 위에 떠오는 글자의 내용만으로 문학작품이 한정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이버 문학이 확산된다면 문학작품은 그 편의성 때문에 경박해져가고, 저급의 오락물로 전락할 위험성마저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을 뒤덮고 있는 오락적이며, 찰나적인 치졸성과 거기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요구가 문학으로 확산되어갈 때, 문학은 그 본질의 훼손을 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문학 작품을 단순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상품으로 인지할 때 현재의 인터넷 문화의 저급화가 문학에까지 확산되어 올 것은 거의 확실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사이버 공간으로 문학 작품이 이입되어올 때, 심각한 사유가 요구되는 진지한 작품보다는 흥미 위주의 가벼운 글들,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글들만이 그 자리를 점령해갈 것이 뻔한 것 아니겠는가. 소설의 경우는 장편소설보다는 길이가 극히 짧은 단편이나, 꽁트 같은 장르만이 그 명맥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또한 엄격한 의미 사이버 문학은 그 속성상 작가에게서 독자로 향하는 일방 통행로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상호 소통성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상호소통성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지적 불균형과 책임감 유무에 의해 자칫 구제 불능의 늪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근래 인터넷상의 익명성과 편의성, 동시성이 언어 파괴와 사회 통념 파괴라는 극단적인 부정적 측면 노출을 떠 올려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문학작품은 언어에 의해서 구축되는 상징체계이다. 표현되어 있는 언어만이 아니라, 그 언어가 함축하고 포괄하고 있는 깊이와 넓이에 대한 인식은 적절한 시간과 사고의 폭을 요구한다.

그런데 편의성을 앞세운 사이버 문학이 그것도 속도만을 의식하는 세태에 맞물려 문학의 본질파괴와 언어 미학의 심각한 훼손이 확실하게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의 극복을 위한 진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때 사진술의 발명과 더불어 그림이 끝났다는 예견을 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대상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는 사진이 있는데, 대상을 힘겹게 화폭이 옮기는 회화의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사진은 사진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그 역할이 따로 있었고, 사진과 상관없이 그림은 그림대로 제 세계를 발전시켜 왔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사이버 문학, 혹은 디지털 문학 작품의 확산 잠깐은 전통적 활자문학을 잠식하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국 문학에 대한 전체 영역을 확대시키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 자극도 되면서, 양립하여 발전되어 나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전 '춘향전'을 수 없이 영화 감독들이 새롭게 찍어내도, 거기 등장하는 '춘향'을 바라보는 관객 모두가 영화 속의 춘향에게 만족하지 않는다. 도리어 거의 모든 관객들은 영화 속 춘향에게 실망하는 것이다.

활자 뒤쪽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고 숨어있던 우리의 '춘향'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합쳐져서, 독자의 수효만큼 각각 다른 몸집과 얼굴과 미소를 지닌 채 그 동안 살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영화 속 '춘향'은 그 영화를 찍은 감독의 인식 범위 내에서만 춘향일 뿐, 관객 모두의 상상력 속에 살아 있는 춘향과는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한계이며, 운명이다. 마찬가지로 사이버 문학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지만 고전적 관습 속에서, 내용만이 아니라 손안에 감촉으로 살아 있는 활자 책의 상큼한 잉크 냄새 역시 또 다른 생명력으로 살아갈 것이다.

컴퓨터 보급이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의 예견은 종이 소비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종이 소비가 두 곱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보여 주듯 우리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이 활자문학을 위축시키고 잠식시킬 것이라는 우려나, 문학 작품 수준의 하향화에 대한 불안은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책을 손안에 넣고,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도, 혹은 여행 중에도, 읽을 수 있도록 현재 미국에서는 책 크기에 책의 질감이 느껴지는 모니터가 실용화되어 있다. 여기에 읽고 싶은 책의 작은 칩을 끼워 책장을 넘기는 기분으로 작은 단추를 눌러가며 어느 장소에서건 디지털 북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금년 말까지는 이런 형태의 독서용 모니터가 시판될 것이라는 소식이 있다. 그렇다면 커다란 모니터 앞에서 시력 장해를 일으키며 긴 소설을 읽을 필요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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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건 사이버 공간 위의 문학은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서 외면될 수 없는 문화 현상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

이 사이버 문학이 문학의 기존의 본질 훼손에 대한 우려는 사실이나, 어느 시대에나 그 당대 사회 문화적 요구에 의해 고급 문화나 저급 문화가 공존해 왔고, 이 시대 역시 그러한 일반적 사회 현상 속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급하고 경박한 문화 현상의 확산 속에 역설적으로 독자에 따라 여전히 고급 문학에 대한 향수와 선호도는 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춘향'이 수 없이 만들어져도 여전히 활자 속의 춘향이 살아 있듯 제대로 장정된 활자 책 속에 전통적 문학작품은 본래의 제 영역을 지켜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속에서 사이버 문학 역시 우리의 우려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우리들 자신이 문학의 저급화 내지, 편의성을 빙자한 경박성 쪽으로의 추락을 방지하는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야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보다 긍정적 측면에서 이 사이버 문학 내지, 디지털 문학의 확산력이 문학의 일반화를 추진시키는 역할에도 기대를 해보아야 한다.

사진과 그림이 각자의 역할을 발전시켜 나간 것 같이, 활자문학 역시 이 사이버 문학의 확산력의 영향 속에 독자층이 확대되는 도약의 긍정적 여건을 포착하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 역시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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