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巫女圖' 서두 구조의 의미 고찰

                                                         

 

                                                                                                               <목차 >

                                                                                                               1. 서설

                                                                                                               2. '巫女圖' 서두 구조의 의미

                                                                                                               3. 결언

 

1 . 서 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김동리라는 이름을 건너 뛰어 그 서술이 가능할까. 만약 김동리 소설을 언급하면서 모화나, 모랭이, 연달래나 을화의 이름을 지우고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인가, 쾌자 자락 휘날리며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네들이 없었을 때 동리 소설의 그 그윽한 몽환감과 한지에 먹물 번지듯 번져가던 그 안개 같은 신비감이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시간 낭비의 우문임을 우리는 안다. 적어도 소설에 대해 단순한 흥미 이상의 관심을 지닌 독자라면 동리 소설을 관류하는 음산한 아름다움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어렴풋하나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리 소설의 출발점으로 보이는 「巫女圖」에서부터 『乙火』(1978)에 이르기까지 그의 중요한 소설의 대부분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뿌우연 물안개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이 동일한 질량으로 왕복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학이 인간 존재의 존재론적 탐구에 관심을 갖는 예술 양식이고, 특히 소설이 삶의 구체성에 더욱 밀착되어 있는 양식이라면 존재의 영원한 미로(迷路)인 <죽음>의 문제가 소설 구조 속에서 논의되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동리 소설 대부분을 관류하는 죽음의 빛깔에 대한 추적은 동리 소설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또한 그가 지녀 온 소설사적 위상으로 해서 한국 현대 소설의 특질 하나를 도출하는 한 시론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한국 소설과 김동리라는 거인.

그의 소설과 죽음의 문제.

그가 표출해 낸 독특한 <죽음>의 빛깔과 그 냄새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의 규명. - 그것들이 본고에서 추적하고자 하는 필자의 관심이다.



2. '巫女圖' 서두의 의미


신당으로의 도피라고 불리워지는 한국적 토속성 혹은 복고적 낭만성 기독교적 부권보다 무속(巫俗)의 모권성이 고양된 세계 등으로 평가되어 온 동리 소설은 우선 외형적으로도 동시대의 작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한정된 세계에의 지향성을 보여왔다.


그는 사실 50여 년의 작품 생활 중 6·25 이후 현실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보인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줄곧 그가 초기에부터 추적해 왔던 인간의 원초적인 본질 문제에 천착해 왔고 그러한 그의 개성이 다른 작가보다 많은 비중으로 <죽음>의 문제를 다루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문제만큼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뷔작인 「山火」(1936)가 그렇고 , 같은 해의 「바위」가, 「巫女圖」가 그렇다. 그는 이어서 「黃土記」(1939), 「달」(1947), 「願往生歌」(1955), 『사반의 十字架』(1957),「旅愁」(1957), 「당고개 巫堂」(1959), 『이 곳에 던져지다』(1960), 「等身佛」(1961), 「늪」(1964),「까치소리」(1966), 「저승새」(1968)에 이르는 전 기간동안 음산하면서도 눅눅한 죽음의 그림자를 늘 곁에 다정하게 거느리고 있었다. 「巫女圖」의 심화 확대로 일컬어지는 『乙火』에서는 보다 짙은 그림자로 죽음은 삶과 같은 비중으로 수평의 위치에 나란히 놓여 있다.

그렇다면 동리 소설에서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완전한 단절, 완벽한 나락의 표징인가. 혹은 또 다른 세계로의 이행(移行), 상승(上昇)의로의 관문인가. 아니면 끝없는 자연의 순환 속 질서의 한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다는 자각이 왔을 때 인류는 이 죽음의 절망감과 공포의 극소화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고, 이 노력의 일부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환영을 만들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거의 모든 종교가 그래서 강도는 다르더라도 내세를 설정해 왔고, 이 내세의 비중이 현세적 삶을 약화시켜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게 하기도 하고, 때로 현세적 삶의 비중을 극도로 희석시키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세에 있어 죽음의 공포는 인간이 그것을 단절과 고립 속에서 맞이할 때 가공할 두려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 삶을 넘어 모든 사람이 영속성의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었던 고대인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비교적 친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M. Eliade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생과 사를 하나의 반복인 주기의 리듬으로 생각하고 죽음 그 자체를 <太初의 그 時間>으로의 회귀로 받아들였으리라는 가정을 원시 종교의 수많은 제의(祭儀)의 실례를 통해서 유추하고 있다. 특히 자연 현상에서 보이는 리듬, 계절의 변화, 달의 주기 같은 것에서 유추하였을 고대인의 생사관은 오늘날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와 각박한 절망감과는 다른 차원이었으리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달이 초생달에서 자라서 보름달이 되고, 다시 쇠퇴하여 사라졌다가 3일만에 신월로 살아나는 것에서 사자도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 양식을 획득할 것이라는 상징적 해석은 가능했으리라는 짐작이다. 이와 같은 신화적(神話的) 사고(思考)는 우리의 단군 신화에 보이는 곰의 100일동안 굴 속 어둠과 굶주림의 의식과도 상통된다.

A.Alvarez의 연구에 의하면 서구사회에서 한 때 자살이 묵인되고 찬양되던 열광적 신앙의 시기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죽음을 통해 육체의 덫으로부터 해방되어 보다 완전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이러한 인식은 비단 서구의 한 시기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장자(莊子) 역시 생과 사를 자연의 질서 속, 하나의 순환(循環)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인간 존재의 영구 지속의 희구하는 무속 현장의 종합적 고찰 을 통해 원본사고(原本思考/Arche-pattern)를 추출해 낸 김태곤의 무속적 생사관 역시 죽음을 하나의 다른 세계로의 이행(移行)을 위한 관문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대부분 인간의 현실적 삶은 결핍과 갈증, 모순의 구조이며 특히 소설의 경우 인간들의 보다 극적인 삶을 반영, 창조해야 하는 속성 때문에 <죽음>을 구조 속에 배열하게 될 때 그 소설 속의 현실적 삶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유 죽음은 현세적 삶의 고통을 무화시키고 소거시키는 기능을 가지면 여기에 내세에 대한 환영이 게재될 때 죽음은 하나의 통과 제의적 관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리의 작가적 생애 전체를 통해 그를 떠나지 않고 맴돌던 죽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가 문학을 하게 된 동기는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두려워 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작품의 대부분은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초기 작품에서만 해도 그렇고, 「무녀도」,「황토기」,「바위」 가 모두 그렇고 나중에 장편 『사반의 십자가』가 역시 그렇다. 죽음에 대한 나의 집착은 나의 문학을 종교와 결부지어 놓은 건지 모른다(중략). 내가 병을 자주 앓던 소년 시절부터 이미 50년이 지난 지금은 성격이나 취향 따위가 바뀐 것 같으나 죽음에 대한 자율은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 있다.

(서강대 신문, 1974. 9.27, 4면)


죽음 자체를 창작의 선의식(先意識)에 내재하고 있었기에 그의 공식적인 첫 작품인 『山火』에서부터 죽음이 작품 구조의 중요 모티프로 설정되고, 그의 전 작품의 모체가 되어 있는 「巫女圖」의 핵으로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山火」(1936)는 가난과 무지로 상징되는 산골 사람들이 그들과 대립되어 설정되어 있는 윤 참봉네의 죽은 쇠고기를 끓여먹고 죽어 가는 이야기이다. 굶어서 죽은 누에 새끼들, 영양실조가 된 산부의 사산(死産), 병들어 죽은 소의 매장, 윤 참봉 담배 대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작은 쇠, 한쇠의 꿈. 그 모두가 아득한 절망과 결핍의 현세적 상황이다. 당 시대 궁핍한 삶의 축도들로 무겁고 암울한 에피소드들은 그들이 그토록 손을 부비며 기원하는데도 산신(山神)님의 침묵과 외면 속에 번져 가는 산불에 비례되어 허무 속에 잠겨 버린다. 솔직히 그의 첫 작품인 「山火」에는 아무런 구원의 징조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의 절망과 나락만이 무겁고 어둡게 깔려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곧 이어 발표된 「바위」에 오면 죽음의 빛깔이 어슴프레 변모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죽음이 개인 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원의 대상도 추상적이던 산신님이 오감으로 우선 감지되는 바위로 바뀐다. 거기에 문둥병에 걸린 소외의 인물이다. 남편과 자식마저도 외면해 버린 절대 고립 속에서 그녀에게 단 하나의 염원인 아들과의 동일성 회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복바위를 상징적 관문으로 저쪽에서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바라보던 그 조그만 토막이 아니라 훨훨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한 순간 그녀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다시 보아도 역시 불길이었다. "기어이 밭 주인이……" 순간 그녀는 화석이 되는 듯 했다. 감은 눈에도 찬연한 불길은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감아도 불, 떠도 불, 불, 불,……그녀는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이미 감각도 없는 두 손으로 바위를 더듬었다. 그리하여 바위를 안은 그녀는 만족한 듯이 자기의 송장같이 검은 얼굴을 부비었다. 바위 위로는 싸늘한 눈물 한 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녀에게 있어 현실적 삶의 마지막 공간이었던 움막집이 불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녀에게 있어 이승의 세계는 이미 무화(無化)되어 버린다. 그녀는 그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복바위를 가는 것으로 구원을 기도했던 습관에서 한 차원 높은 적극성으로 현세적 생명 전체를 전신 투지, 그 복바위를 매개로 하여 아들 술이와의 동일성 회복을 위한 새로운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그녀의 염원에 대한 획득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적어도 그녀가 <온몸으로 바위를 안고 송장 같은 검은 얼굴을 부비는> 순간 그녀 얼굴에 떠오르는 <만족한> 표정이야말로 「山火」에서 보였던 완벽한 절망과 허무에 대한 탈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 때 다른 세계로의 이행(移行)에 있어 불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Bachelard에 의하면 불은 물, 공기, 대지와 더불어 4원소 중의 하나이며 특히 불은 물과 더불어 소멸과 생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山火」에서의 죽음이 「바위」에서 다른 세계로의 이행에 대한 어렴풋한 암시를 주었다면 같은 해 발표된 「巫女圖」는 그가 바위에서 문둥이 여자가 바위를 매개로 하여 찾아간 세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동리는 그가 설정해 놓은 죽음 저쪽 세계를 그의 전 작가 생활 동안 꾸준히 그리워하며 살아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巫女圖」는 그의 최신작 「乙火」의 전신으로 작가 자신도 여러 번 개작을 해 올만큼 애착을 가진 작품이고, 그만큼 여러 연구가들에 의해 다각적인 해석이 내려진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동안의 연구가들이 이 「巫女圖」의 가장 큰 비밀을 간과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와 무속의 대한 대립, 시대에 따른 종교적 갈등 속에 무속적인 것의 소멸 등으로 이 소설의 서두에 보이는 동리가 일생을 놓지 못하고 있는 <太初의 그 時間과 空間>을 확인하지 못하고 가버린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작품 하나 하나의 독자적 특성과 가치 규명에 못지 않게 전체 작품을 꿰뚫어 흐르는 의식의 지향점을 확인해 내는 것 역시 중요한 것임을 그 동안 더러 잊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산마루로 들판 위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래밭에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의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와 온 듯한 피곤에 젖어있다. 무당은 뒤에 눌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질펀히 흘러내리는 검은 강물,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라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 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이 작품의 서두에 액자 역할로 등장하는 이 한 폭의 그림이 갖는 상징성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그림은 모화가 아들 욱이의 대립 구도 속에서 그 양자의 대립을 조화시켜야 하는 귀머거리 딸 낭이가 그린 그림이다.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그녀는 듣거나 말하거나 하는 현실과의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앞서 간 어미. 모화의 존재 공간을 넘볼 수도 있는 중간자의 위치에 있다. 물에 빠져 죽은 김씨 혼을 건지던 백사장 서북쪽으로 흐르던 검은 물을 배경으로 해서 그의 어미 모화는 다른 세계로 앞서 여정을 꾸렸던 것이다.


그녀의 음성은 언제보다도 더 구슬펐고 몸뚱이는 뼈도 살도 없는 율동으로 화한 듯 너울거렸고 …… 취한 양 얼이 빠진 양 구경하는 여인들의 숨결은 모화의 쾌자 자락만 따라 오르내렸다. 모화의 숨결을 따라 나부끼는 듯도 했고, 모화의 숨결은 한 많은 김씨 부인의 혼령을 받아 청승에 자지러진 채 비밀을 품고 조용히 굽이돌아 흐르는 강물과 함께 자리를 옮겨가는 하늘의 별들을 삼키는 듯 했다.

(중략)

모화는 넋대를 따라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옷이 물에 젖어 한 자락이 몸에 휘감기고 한 자락은 물에 떠서 나부꼈다. 검은 물은 그녀의 허리를 잠그고, 가슴을 잠그고 점점 부풀어오른다.(중략) 모화의 몸은 넋두리와 함께 물 속에 아주 잠겨 버렸다. 처음엔 쾌자 자락이 보이더니 그것마저 잠겨버리고, 넋대만 물위에 빙빙 돌다가 흘러내렸다.


서사 구조상의 시간으로 보면 모화의 죽음이 앞에 놓이고 소설 서두의 낭이가 그린 그림이 뒤에 놓인. 말하자면 욱이도 모화도 다 떠나버린 이후 그 여운 위에 한 폭의 그림이 모화가 통과했던 관문의 상징으로 독자에게 남아있으며 다른 한쪽으로는 작가 김동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그 그림은 동리를 기다리며 숙명적으로 그 앞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한 폭 그림이 상징하는 시간과 공간은 동리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원초적 고향으로 뿌리를 내려버렸던 것이다. M.Eliade의 성(聖)으로의 공간개념(空間槪念)이나 N.Frye의 낙원(樂園)에 상응하는 동리 소설의 본향(本鄕)이 낭이가 그린 한 폭의 그림에 구축된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강가 모래밭, 새벽이 가까워오는 달이 죽어 있고 , 별만이 나와있는 그 시공은 신화 속의 <太初의 그 時間>이다.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완전히 혼령으로 화한 모화의 현실적 죽음은 속(俗)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로의 자연스러운 이동이다.

모화와 낭이가 살고 있던 도깨비 굴 같이 찌그러지고 물이끼 덮인 공간은 모화에게 있어 성과 속을 넘나들 수 있는 관문이었다. 이 공간의 성화(聖化) 지속을 위해 모화는 굿이 없을 때면 늘 술에 취해 이 공간이 속화되는 것을 막고 있다. 이 무덤 같은 공간에 격리되어 있는 낭이는 제 어미가 사들고 들어오는 복숭아를 어미의 품에 뛰어 들어 젖을 빨 듯 받아먹으며 Chaos로의 입문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욱이의 등장은 이 Chaos로의 공간에 혼란을 가져온다. 이 혼란과 갈등의 과정 속에서 모화는 예기소의 마지막 제의를 통해 완벽한 Chaos속으로 복귀해 돌아간다. 그녀의 현실적 죽음이 물이라는 상징 공간과 Chaos적 시간과 합쳐져 일어남으로 해서 그녀의 죽음이 갖는 생명의 전이성은 훨씬 강한 설득력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아비의 나귀등에 흔들리며 떠돌고 있는 낭이에게는 Cosmos쪽의 세계에 한 다리를 드리우고 있으면서도 귀머거리여서 듣고 말하는 소통이 불완전한 전제된 숙명 속에서, 제 어미가 앞서 가 머물고 있을 Chaos쪽에 대한 회귀 본능 속에 언젠가 돌아갈 그 세계를 화선지 위에 간접적으로나마 표출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낭이는 제 어미 모화가 현실 쪽에 머물러 있을 때 더러 기웃거려 기억하고 있는 본향(本鄕)에 대한 아스라한 노스탈지어 속에서 불완전한 현실적 삶을 나귀등에 흔들리며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 본향에의 숙명적 향수는 동리의 다른 소설에도 쉬임 없이 반복된다. 작가 자신 낭이의 혼이 덧씌워져 언젠가 돌아갈 그 본향에의 그리움을 끝없이 토로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달」(1947)이 그렇고, 「당고개 무당」(1959)이 그렇고, 「曼字銅鏡」(1979)이 그렇고, 「저승새」(1968)가 그렇고, 「등신불」,「늪」,「까치소리」,「아들 삼형제」,「願往生歌」,「旅愁」 그 모두가 넒은 의미에서 낭이가 그린 한 폭 무녀도로의 강력한 회귀의 꿈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달」(1948) 은 달이의 잉태 자체를 달의 일부가 모랭이의 몸 속으로 이동해 온 것으로 그의 현실적 죽음을 다시 본래의 달의 원형 속으로 회귀해 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서 이때의 현실세계는 등장 인물에게 있어 잠시의 외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달은 전 세계에 초종파적으로 죽음과 재생을 의미하고 있음을 증언해 온 사람도 많지만 주인공의 이름 자체를 <달이>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 역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달이(達伊)의 잉태는 둥근 달이 뜬 강가 모래밭에서, 모랭이가 서른 살이 되던 해 같이 굿을 마치고 돌아오던 화랑이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풀밭에는 너무 이슬이 자욱하여 보드라운 모래바닥을 찾아 그들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고목이 울창한 숲을 휘돌아 봇도랑의 맑은 물은 흘러내리고 쉴 사이 없이 물레방아 바퀴는 소리를 내었다. 여자의 몸에는 시원한 강물이 흘러들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보름 지난 둥근 달이 시작도 끝도 없는 긴 강물처럼 여자의 온몸에 흘러드는 것이었다. 끝없는 강물이 자꾸 흘러내려 나중에는 달이 실날 같이 가늘어지고 있었고, 실날 같은 달이 마저 흘러내리고 강물이 다하였을 때 여자의 배와 가슴속엔 이미 그 달과 시원한 강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여자의 몸에 손끝까지, 그 희고 싸늘한 달빛이 흘러내려, 마침내 몸은 달 속에 흥건히 잠기고 말았고 그리하여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아아, 신령님께서 나에게 달님을 점지하셨다.


자연과 이단의 완전한 융합 속, 달의 일부가 모랭이에게로 옮겨왔을 뿐 어디에도 남녀간의 성적 접촉의 체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달과 물의 교합은 한국의 민간 전승 사고에서도 생명의 생성과 연관을 짓는다. 이렇게 잠시 현실 세계에 외출 나왔던 달이는 16년이 지났을 때 서둘러 제가 있었던 달 속으로 자연스럽게 회귀해 버린다.


그의 얼굴은 달빛에 반사되어 거울같이 희고 둥글며 아름다와 보였다…… 달이는 물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묻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냐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달이는 배에서 물 속으로 떨어지며 있는 것이었다.


달이의 현실적 죽음에는 추호의 비극성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는 물과 달이 교합된 순간에 잠깐 이쪽 세계로 외출을 나왔듯이 바로 그러한 태초의 시간에 자연스럽게 자기 본향으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귀에 대한 신념은 잠시 현세에서 모자로 인연을 맺었던 모랭이의 태도를 통해 소설의 결말에서 보다 확연하게 드러난다.


숲 위를 둥실 올라온 달이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환하게 비쳤을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놀란 듯이 배에서 왈칵 뛰어 일어나며

" 아아, 저기 달이……"


하고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질렀다. 두 사람도 손에서 갈퀴와 노를 놓아버리고 무당이 손을 들어 가르치는 쪽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바다같이 깊고 어두운 수풀 위에 주름살 한 가닥 없이 활짝 피인 달의 얼굴은 과연 떠올라 왔던 것이다. 세 사람은 물 속 의 달은 완전히 잊은 것처럼 하늘의 달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달이는 잠시 분화되어 왔던 본체 속에 회귀, 합일함으로 해서 「巫女圖」에서 추상적으로 제시되었던 그 회귀의 시공이 구상화되어 독자에게 제시된다. 달이의 출생도 죽음도 두 세계의 왕복에 의한 통과 의식이었을 뿐, 현세에 비중이 실려 있지를 않는 것이다.


「당고개 무당」(1959) 에서의 무당의 죽음 역시 이 성(聖)과 속(俗)의 왕복과, Chaos쪽에 실린 무게를 계속하여 확인시켜준다. 당고개네에게 있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성화(聖化) 된 공간이며 Chaos로의 왕래 공간이다. 그러나 그녀의 두 딸이 기생이 되면서 그녀는 속화된 다리목 술집에서 일약 명기들이 어머니로 신분이 바뀌지만 그 현실적인 부귀가 성의 세계에서는 정반대의 고독과 결핍으로 작용한다.


"엄마, 서낭당에는 뭣 때문에 그렇게 오래 앉아 쉬어요?"

하고 큰딸이 눈에 모를 세우면 당고개네는

"옛날 살던 곳 아니가?"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옛날 살던 곳이면 제일인가? 그놈의 귀신 안 보니 시원만 하네."

(중략)

"그깟 도깨비 굴 같은데 뭐 그리 좋은고?"

"에, 그러지 말아라. 거기 들어가 누우니 나는 그만 머리가 시원해지더라"


성과 속의 세계. Chaos와 Chaos사이를 부단히 왕복해야 하는 당고개네에 있어 Chaos로의 왕복 금지는 근본적인 존재에 대한 점검의 계기이다.

그 근원적 존재 부정 앞에 당고개네는 당혹한다.

딸들이 가람을 시켜 서낭당을 헐어 버린 뒤 당고개네는 견디다 못해 그 공간 대신 또 하나의 왕복 출입구인 <굿>을 하게 해달라고 딸들에게 애원한다. 그러나 그것마저 거절되었을 때 그녀의 선택의 폭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물과 육지를 왕복하며 살아야 하는 개구리 같은 양서류에게 물과 흙의 왕복을 금지시켰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출구는 무엇인가.

결국 건조해 가는 피부와 더불어 말라죽지 않기 위해서는 옛 올챙이 시절 오직 물에서만 살았던 잠재된 기억을 더듬어 물 속 깊이 하강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국 보름달이 밝은 밤 그녀는 다리 난간을 뛰어내림으로써 양쪽 세계로의 왕복을 포기하고 원래 머물렀던 Chaos쪽의 존재 근원 속에 회귀, 융합되고 만다. 딸 아이 둘을 내보내고도 쓰러져 가는 집의 쓸쓸한 가시성과는 상관없이 그 공간 속에서 당고개네는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아팠던 머리가 시원하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 공간이 소실되었을 때 그녀가 성과 속을 넘나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초시간적인 <굿>의 몽환 속에서 객관적인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획득마저 실패했을 때 그녀는 물이 흐르고 있는 계곡을 향해 보름달이 뜨는 성스러운 시간대에 회귀의 여장을 꾸린 것이다.


「曼字銅鏡(1979)은 앞서의 「달」이나 「당고개 무당」의 죽음보다는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을 지니고 있다. 연달래의 딸 영희의 자살 사건과 화자인 나의 등장으로 인한 복합 구조와 실증성의 획득, 앞에 보인 소설들이 죽음의 매개물로 선택한 물 대신 불의 등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불은 물과 더불어 소멸과 생성의 매개물로서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불을 통한 죽음은 그의 또 다른 작품 「等身佛」(1961)에서도 이미 매개체로 등장했기 때문에 기본 구조에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의 중요한 변화는 앞의 소설들이 한 개의 죽음을 조명한 대신 연달래와 전영감의 이원적인 죽음이 불을 통해 동일성을 획득하고 있는 사실이다.

신라의 성곽과 전 영감의 고착 관념, 연달래의 전 영감에서 느끼는 고착관념과 그녀 몸주와 전 영감을 동일시하는 이중의 고착 관념, 이들을 분리하려 드는 속(俗)의 횡포에 맞서 그들은 그들 모두가 있을 수 있는 상징 공간 속에서 같이 불 속에 타들어 버리는 현실적 죽음을 통해 완벽하고도 영원한 분리 불가의 성(聖)적 합일을 획득하고 있다.

「等身佛」에서의 만적의 성불 과정(成佛 過程)을 통한 현세적 죽음이 그의 머리 위에 천 년이라는 객관적 시간을 뛰어넘어 원광(圓光)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늪」(1966)에서와 같이 늪 속에 이미 빨려 들어가 있는 어머니가 상징하는 본향을 향해 소년과 누이가 끌려 들어가는 현실적인 죽음도 동리는 보여 주고 있다. 「等身佛」에서의 만적의 죽음이나 늪에서의 소년과 누이의 죽음 역시 앞서 언급한 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죽음은 현세적 삶보다는 더 나은 세계로의 이동이며, 현실적인 고통이나 갈등의 무화 내지 소거의 기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아들 삼 형제」(1948)나, 「願往生歌」(1955), 「旅愁」(1957)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소설에 드러나는 죽음 역시 보다 나은 세계로의 이동이지 죽음 자체가 공포나 절망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승새」(1968)는 동리가 무속 쪽에서 추구해 왔던 죽음에 대한 독특한 시각과 불교 쪽에서 접근해 왔던 죽음이 극적으로 조화된 동리 소설의 생사관(生死觀)에 대한 한 도달점으로 보인다. <비둘기보디다 조금 작고 야윈 듯한 빨강, 노랑, 주황, 그리고 잿빛의 오색실을 꿈 속 같이 은은하게 감은 > 한 마리 새가 상징하는 시간과 공간, 이승과 저승의 초월성은 그가 「巫女圖」를 쓴 후 30여 년간 꾸준히 천착해 왔던 죽음의 문제에 내린 하나의 결론이다. <너무 언짢아하지 말어. 난 죽어도 이도령 못 잊어. 날 믿어 줘.> 다른 곳으로 혼처를 정한 남이의 심적 상태는 <그럼 이도령도 마음 변하지 말아 줘. 나 먼저 저승 가서 기다릴께>를 기점으로 이승과 저승. Cosmos와 Chaos의 장벽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어져 버린다. 시집간 지 한 해 만에 죽어버린 남이에게 있어 사랑은 현세적인 생사를 초월한 절대 인연으로의 인식이다. 만허 스님이 <새라고 백 년을 못 사는가. 새로도 태어나고 사람으로도 태어나고……>의 독백 속에도 시간의 초월과 불교적 윤회감이 깊이 착색되어 있다. 35년간을 해마다 같은 무렵 오는 것은 그렇다 치고 떠날 때의 모습도 일이 없는 한 마리의 새가 다그르르…… 내는 소리가 함께 20리 거리의 샘터와 측백나무 숲을 찾는 만허 스님에게 있어 그 특수한 시간과 공간은 현실적인 시공과는 상관없는 절대 성역, 시공이 초월된 본향으로의 외출이다. 그 시공이 초월된 본향 속에서 35년의 시간이나 이승과 저승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남이와 이도령으로 다시 살아나 거기서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것이다.


cosmos쪽에서 보면 空間 秩序와 時間 秩序 依해 生과 死가 嚴格히 分化되어 이 생과 사는 永遠히 만날 수 없는 直線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생과 사의 分化 秩序를 가져오게 된 cosmos의 근원인 chaos로 거슬러 올라가면 chaos는 미분화, 無空間, 無時間의 永遠 그대로여서 空間性과 時間性에 依해 일어나는 모든 分化 現狀은 일어날 수 없다.


김태곤이 언급한 이 Chaos가 바로 저승새가 찾아와 머무는 동안 샘터의 그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분리를 가져왔던 두 개의 현실적 사건, 남이의 결혼과 남이의 죽음은 이 Chaos속의 영원 속에서는 완전 소거되어 본래의 사랑하던 젊은 남녀로의 환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Chaos는 저승새가 돌아가 버림으로 해서 정지되며, 이도령은 다시 스님 만허로 복귀, 1년을 다시 기다리는 비극성을 안고 있다. 이승과 저승, 속과 성의 세계를 왕복하던 스님 만허가 완벽한 이도령으로 안주하기 위해서는 저승새가 나타난 지 35년이라는 세월이 경과한 뒤에야 가능해진다.


스님의 두 눈에는 점차 야릇한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형언할 수도 없는 황홀한 환희라기 보다 차라리 법열에 잠기는 듯 했다. 취한 듯한 얼굴로 새를 바라보고 있던 스님은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났다. 기둥에 붙여 세워 두었던 지팡이를 짚고 섬돌 아래로 내려섰다. 순간 앞산의 벌건 진달래 벼랑이 이날 따라 갑자기 스님의 눈앞에 바짝 다가서는 듯 했다.

"오, 가엾은 것,…… 이제 나도 따라 가야지."


만허의 <오, 가엾은 것…… 이제 나도 따라 가야지>의 독백은 세속적 시간으로 36년 전 남이의 <그럼 이도령도 마음 변치 말아 줘. 나 먼저 저승 가서 기다릴께>에 대한 대꾸였고, 적인과 혜인 두 사람이 그 샘터로 찾아갔을 때 이미 만허는 세속적 공간을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스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절에서는 스님이 큰절에 가셨거니 하였다. 그러자 이튿날 스님이 윗녘으로 정처 없이 떠나갔다는 둥, 어느 산중의 벼랑 위에 가만히 앉아서 열반을 했다는 둥, 여러 가지 소문들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마다 오던 다그르르르…… 저승새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샘터를 성역화시키기 위해 날아 왔던 저승새는 더 이상 속의 세계에 간헐적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어져 버린 셈이다. 이제 35년의 왕복을 끝낸 만허가 이도령으로 남이가 머물고 있는 본향 속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현세에서 윗녘으로 떠나갔는지, 어느 산 속 바위 위에서 열반에 들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이제 그가 남이와의 동일성을 획득하였다는 사실이다.

 

 

3. 결언


우리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생물학적 소멸로, 혹은 다른 세계로의 통과 제의적 관문으로, 자연 현상 속의 한 순환 현상이나 불교적 윤회, 기독교적 영생 등의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생사관이 소설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 하는 검토는 소설에 대한 정신사적, 혹은 현상학적 접근에 도움을 주리라는 필자의 의견에 별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김동리는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져 왔음도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일종의 현상학적 접근의 한 시론으로 그의 소설 속의 죽음들이 갖는 의미를 추적해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동리 소설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독특한 생사관이 일관되게 소설의 저류를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해 동리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그들이 안주할 <本鄕>이 처음부터 설정되어 있었고, 그네들의 현세적 삶은 실제적으로 그들이 돌아가 안주할 그 영속적 세계에서의 외출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초기 작품 「巫女圖」서두의 낭이가 그린 한 폭의 그림.

이 한 폭의 그림을 향해 동리 소설의 모든 등장 인물은 강렬한 지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녀도 그림 속의 Chaos적 성역으로의 끊임없는 노스탈지어 속에 회귀(回歸)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인물들의 <本鄕>이 불교적 순환 기점이라기보다는 출발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무시간, 무공간, 미분화의 초월적 시공이라는 사실이다.

동리소설이 지니고 있는 한국 소설사의 위상으로 보아 동리 소설에 보이는 이러한 독특한 생사관은 이것을 수용한 한국인의 생사관(生死觀)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부연해 둔다.



<<참고문헌 >>


김병욱, 『文學과 神話』, 圖書出版 대람, 1982.

김열규, 『韓國神話와 巫俗硏究』,일조각, 1982.

         , 『韓國民俗과 文學硏究』,일조각, 1982.

김우종, 『韓國現代小說史』, 朝明文化史, 1969.

김윤식, 『韓國近代文學思想史』, 한길사, 1984.

김태곤, 『韓國巫俗硏究』, 집문당, 1981.

유금호, 『韓國現代小說에 나타난 죽음의 硏究』, 동천사, 1988.

         , 『言語, 그 꿈과 絶望』, 동천사, 1985.

이재선, 『한국현대소설사』, 홍성사, 1981.

한용환, 『한국소설의 반성』, 이우, 1984.

Alvarez, Alfred., The Savage God; A Study of Suicide, 최승자 역, 『자살의 연구』,

청하, 1982.

Bachelard, Gaston., La Psychoanalysis du feu, 민희식 역, 『불의 정신 분석』,

삼성, 1980.

Eliade, Mlrcea., Pattern in Comparative Religion, New York, 1958.

E.M. Foster, Aspects of the Novel, London. 1927.

Frye, Northrop., Anatomy of Criticism, Princeton Univ, 1973.

莊子, 『內篇』, 안동림 역주, 현암사, 1983.

 

 

   
 

   
   

Copyright 2006~2018 ⓒyookeumh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