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꾼 꿈

 

 

지난 8월 며칠간 몽골의 바양고비 초원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중국 심양에 들렸다가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 행 비행기편이 있는 걸 알고는 징키스칸의 말 발자국 흔적이 있는 몽골의 대초원이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일정을 바꾸었던 것이다.

솔롱고스?.

무지개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로 그네들이 우리나라를 지칭한다는 이 단어 역시 내게는 너무 유혹적이어서 무작정 비행기를 갈아 탔었다.

 

유럽의 일부까지를 지배했던 이 위대한 민족이 남겨 놓았을 유적과 문물의 흔적에 가슴을 두근거렸던 나는 그러나 부양우카(Buynt-Ukaa) 공항에 내리면서 당혹감에 빠졌었다. 하늘이 너무 푸르렀던 것이다.

멕시코나, 카이로, 혹은 마츄픽츄의 유적 같은 것을 기대했던 나는 아주 어린 시절 시골 고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색깔의 푸른 빛과 흰 구름과 초원 앞에, 여름의 평균 기온 17도C, 엷은 쉐터를 꺼내 입으면서, 한 순간으로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있슴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의 기회를 가진 여행이 되었다.

정말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질리게도 계속되는 초원과 지평선, 거기 수백마리, 수천마리의 양떼와 말들, 띄엄 띄엄 서 있는 그들의 천막집들, 겔?. 그 사이로 말등에 올라 짐승들을 몰고 있는 어른들과 열살도 안되어 보이는 소년들.

다섯 살때부터 말타기를 배웠다는 암부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에게서 나는 초원을 뒤덮고 있는 개양귀비를 닮은 작은 흰꽃의 이름이 <지츠크>라고 불린다는 것을, 보라 빛의 작은 꽃은 <옵스>, 강가의 버들강아지를 닮은 키 작은 나무는 <모르갓스>라는 것들을 배웠다. 돌무더기를 쌓아 푸른 천의 깃대를 꽂아 놓고, 돌멩이며, 돈이며, 심지어는 집에서 잡아 먹은 말 머리뼈까지 올려 놓고, 그들의 소원을 비는 우리들 성황당 역할의 창소가 <어와>이고, 그 푸른 천의 깃대가 <하득>이라는 것도 배웠다.

모든 집에 <아이릭>이라고 불리우는 마유주(馬乳酒)가 항아리에 가득씩 담겨 있어서 약간 맛 지난 막걸리 비슷한 이 음료를 어느 천막에서고 나그네에게 두잔 석잔 끝없이 권하는 바람에 나는 계속 취해서 반쯤은 꿈꾸는 기분의 여정을 계속했다.

 

겔을 꾸미는데 1시간, 뜯는데 30분이라는 기동성.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승마대회에는 세 살짜리부터 35k를 달린다고 했다. 거기에 소 한 마리를 건포로 말리면 베낭 두 개에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그들의 갈무리 습성이 과거 지구의 절반을 휘달릴 수 있는 역동성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왔다.

남녀 구별 없이 말 등에 오르면 초원을 나르듯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 속도 앞에 과거의 한 시기, 정착 농경 민족들이 감히 그들을 대항할 수 없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짐승이 움직여 가는데로 그 뒤를 따라가 거기 잠시 머물고, 다시 떠나는 유랑의 습관을 지켜가는 동안 다른 세계는 빠르게 변해 갔고 그들의 역사는 천천히 화석처럼 묻혀 갔으리라.

유목민족답게 그들은 징키스칸의 무덤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오랜 수도였던 으르헌 강가의 하라호름도 낡은 불교 사원인 이르덴주 사원이 남아 있을 뿐 그냥 광활하고 텅빈 초원 뿐이었다..

나는 그 초원에 서서 180마리의 표범가죽을 덮었다는 그들 황제의 겔을 중심으로 수만, 수십만개의 겔이 질서 정연하게 수도로의 위용을 자랑했을 상상 속의 도시를 마음껏 그려 볼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슴으로해서 더 자유롭게 펼쳐지는 웅장한 도시와 말 발굽소리와 그들의 숨소리...... 무덤을 갖지 않음으로써 징키스칸의 시신은 유럽까지 진출했던 넓은 영토 어디에서나 수백, 수천개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돌기둥 하나 남아 있지 않는 그네들의 옛 수도여서 그 앞에 선 모든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위대한 도시를 상상 속에 그려 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겔 안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호모스(말똥)과 알라가스(소똥)로 초원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호르흑>이라고 불리우는 양고기 찜에,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를 마시며 바라 보았던 주먹만큼씩하게 보이던 새벽별들 아래서 나는 로마나, 아테네, 카이로에서 보았던 역사의 흔적들 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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