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에서

 


 지난 해 여름 미얀마의 양곤에 며칠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하루에 한번씩 스콜이 쏟아져 열기를 식혀주곤 하던 열대의 수림에 쌓인 그 오래되고 가난한 도시의 인파 속에서 유난히 빨간색 승복의 아기 스님 들이 맨발로 탁발에 나선 풍경들은 너무 이색적이었다. 원래 400만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그곳 미얀마는 정치나, 경제 상황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정적과 평화, 영혼의 자유만이 깃들인 공간이었다. 일생에 한번은 누구나 출가하여 승복을 입어야하는 그곳의 풍습은 생할과 종교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남녀 따로 구별이 없는 치마 비슷한 ‘론지’라는 전통 의상에 맨 발. 그래서 사원에 들어갈 때는 외국인도 예외 없이 맨발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맨 발로 돌아 다녔던 그곳 양곤에 있던 거대한 사원 스웨다곤 파야(Shwedagon Paya)의 황금색 하나로 번져나가던 저녁 하늘의 풍경은 아마 내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깊은 산 속에 숨은 듯 있어 온 우리의 사찰만이 고정 관념으로 박혀 있던 내게 그곳 사찰은 모든 사람들의 쉼터였고, 안식처였고, 어쩌면 생활 공간의 일부였다.

 높이가 100m나 되는 종 모양의 파고다를 전체를 덮고 있던 금 도금(淘金)의 휘황하던 누런 색감의 음영, 영국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금의 양보다 그곳 스웨다곤 사원 지붕 위를 덮고 있는 금의 양이 훨씬 많을 거라던 안내인의 음성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라 오는 것이다.

 ...... 기원전 600년경 몬족의 오클라파 왕은 이곳 싱구타라 언덕에 왕궁을 가지고 있었어요......오클라파 왕은 석가모니 부처가 탄생하기도 전에 이곳을 지나던 세 사람의 부처가 소유했던 지팡이와 가사와 바리를 보관해 두었다가, 훗날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 중이던 싯다르타의 머리카락 여덟 개를 얻어와서, 이 언덕에 같이 묻고, 높이 20m의 파고다를 세웠답니다. 금(金)판 8,688개로 파고다의 겉을 덮고, 파고다 첩탑 꼭대기 10m 높이 우산에는 5,448개의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2,317개의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를 올려놓아 새벽 빛과 황혼 빛에 세상을 빛내도록 했지요. 이 우산은 1,065개의 금종, 420개의 은종으로 꾸며져 있는데, 바고의 스웨모도오 파야와 함께 이 양곤의 스웨다곤 파야는 기원전 인도 불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서 있던 집채만큼 엄청나게 큰 보리수나무를 지나 100여개의 파고다와 여러 형태의 불상이 모셔진 건물들 사이의 회랑을 맨발로 걸으면서, 확인했던 그곳 론지 차림의 주민들 얼굴 위에 떠오르던 그지없이 평화롭던 얼굴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가족끼리 소풍 나오듯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나와 불상 앞에 합장하고 나누어 먹고, 젊은 연인들은 맨 발로 불상 앞에서 사랑을 약속하고, 현실적 고통은 영겁의 윤회, 내세에 보상받을 것을 믿는 그들에게 현세는 잠깐의 찰나, 지나는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웅산 수지가 10년째 연금상태이고, 대학은 3년째 휴교령이 내려 있는 군사정권의 불안한 정치상황에, 대학은 3년째 휴교상태, GNP 300달러의 경제상황이지만 붉은 색 가사에 맨발로 탁발에 나선 일곱, 여덟 살짜리 아기 스님들 얼굴에도, 좁은 시장 좌판에 귀후비개 몇 개나, 담배 대여섯 갑을 놓고 팔고 있는 가난한 상인들 얼굴 어디에도 찡그린 표정이 없었다.

 춥지 않은 기온을 난방비에 대한 걱정도, 1년 3모작의 쌀 농사로 굶주릴 이유도, ‘론지’ 하나면 해결되는 의상비 걱정도 없는 그들의 영혼을 그토록 자유롭게 하는 것은 가족 중의 누군가는 현재도 승복을 입고 있고, 몇 걸음만 나서도 사찰과 불상이 있는 그 특유의 공간 탓일 것이다.

 방학 때면 거의 매번 여행을 하면서 아주 엉뚱한 공간에서 느끼는 친밀감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적이 있다.

 몇 해전 아프리카의 마사이족 마을에서 며칠인가 머문 적이 있었는데 소똥과 진흙으로 이겨 바른 마사이 마을의 밤 축제에서 소똥 냄새를 맡으며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높이뛰기 선수들만큼이나, 날렵하게 온몸을 튕겨오르던 그들의 춤판에서 내가 느꼈던 평화로움, 창 한 개와 원색의 모포 한 장, 소  피를 빨아먹기 위한 작은 빨대 하나로, 사자 사냥을 떠나는 마을 청년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나 역시 거기 마사이 마을의 청년 전사였을 것 같던 기묘한 미망에 젖은 적이 있었다.

 어둠 저편에서 몇 마리 얼룩무늬 들개의 퍼렇게 빛을 내는 눈들이 보였고, 모닥불 저편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는 집주인의 네 번째 부인 얼굴이 이상하게도 낯익어졌었던 것이다.

 혹시 언젠가 내가 그곳 마사이 청년이 아니었다해도, 그곳을 지나던 바람 한 가닥, 한 방울 빗방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이상한 기억을 나는 맨 발로 걸었던 스웨다곤 사원의 저녁 노을에서 다시 느꼈다면 내가 지나친 현실 외면의 환상주의인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간단없이 부딪쳐 오는 좌절이나, 상처 앞에서 가끔 나는 만약 영겁의 윤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마 전생의 어느 고개 마루에서 내가 만들었던 인연의 결과인지 모른다는 자위를 쉽게 하는 편이다.

 맨 발에 ‘론지’ 한 장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던 그곳 서민들의 삶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현실 도피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여자들의 갈퀴처럼 거칠어 보이던 발 모양이나, 얼굴에 바르던 ‘다나까’라고 불리는 나무뿌리 빻은 허연 액체를 자본주의적, 혹은 서구적 가치 기준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게 아니겠는가.

 어느 스님의 수필에 ‘난’을 기르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출가한 스님이 특별히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리 없겠지만 선물 받은 ‘난’한 분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였다. 외출해 있다가도 비를 맞을까 걱정, 추워서 얼어죽을까 걱정,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난’을 누구에겐가 주고 나서 그토록 마음이 편한 것을 왜 지니고 있었던지,하는 회오의 글이었다.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나, 결핍, 박탈감의 근원에는 결국 소유와 집착에 대한 탐욕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얽매고 있는 탐욕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현재도 너무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게 있어서 불교는 현실적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끔 영혼의 자유를 생각하게 해주는 위무의 공간이다.

 어차피 문학을 한다는 자체가 현실을 넘어서는 꿈꾸기의 공간이라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 불교가 주는 저 영겁의 윤회와 인연은 그만큼 나를 자유롭게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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