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보기 넓게 보기

 

 

글을 쓰는 직업 탓도 있지만 생래적으로 역마살(驛馬煞)이 끼어서 나는 방학때 틈만 나면 이곳 저곳을 싸돌아 다니는 습벽을 영 버리지를 못한다. 그러다 보니 브라질의 아마존강 정글에서 원주민들하고 악어잡이를 하다가 죽을번 한적도 있고, 캐냐의 마사이 마라 마을에 가서 마사이족 새댁이 소똥으로 새 살림집 짓는 걸 도와주다가 엉뚱한 오해를 산 일이 있기도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뒷골목에서 애니스라는 토속주를 멋 모르고 너무 마셔 낭패를 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자주 싸돌아 다니다 보니 엉뚱한 실수도 많지만 평소 스쳐 지나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있기도 한다.

 

작년 여름엔 몽골에 갔다가 옛 수도였던 하라호름을 찾는 길에 바양고비 초원에서 한 사흘 그곳 유목민들하고 생활한 적이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원에 띄엄 띄엄 그네들의 이동식 주택, 겔이 흩어져 있고, 열살도 안되는 어린아이들도 말위에 올라 수백마리 양떼와 낙타를 모는 것을 보면서, 가끔 초원 위로 비가 내리고 나면 지평선 위로 무지개가 깔리곤 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한 여름인데도 17도C의 선선한 기온 속에 하늘은 어린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코발트색이었고, 아이릭이라 불리는 우리 나라 막걸리 비슷한 마유주(馬乳酒)를 한 항아리씩 마련에 두고 지나는 길손들에게 어느 집에서나 두잔, 석잔을 권하는 인심 때문에 거기 머무는 동안 나는 반쯤 취해서 말린 소똥과 말똥으로 지피는 모닥불 앞에서 꿈꾸듯 졸곤하였다.

소박하고 친절하기 그지 없던 그곳 유목민들의 외모는 거의 우리와 구별이 안되었는데 그곳 사람들 대부분이 볼의 피부가 빨갛게 익은데다 터져 있었다. 처음에는 맑은 공기 탓으로만 알았더니 유목민들은 거의 몸을 씻지 않는 탓이란 걸 알았다. 물 한컵으로 이를 닦고, 그 물로 다시 얼굴을 형식적으로 씻는 그들의 습관만은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는데 그들은 옷조차도 냇물에 가서 직접 빨지를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에의 경외심 앞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그들은 냇물에서 직접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하지 않는 거였다. 만약 흘러가는 냇물에 직접 몸을 씻거나 빨래를 했다가는 엄청난 재앙을 당할 것으로 그들은 선조때부터 믿어 오고 있었다.

필요한만큼만 물을 떠다가 사용하고 한 번 쓴 물은 초원에 뿌려 다시 정화되어 흙속에 스며들고...... 그들이 사는 겔을 짓는데 두 시간, 뜯어서 낙타와 말 등에 옮겨 싣는데 한 시간 .....그래서 그들이 머물었다가 떠나간 주거지에는 짐승들의 분뇨마져 거의 연료로 사용해 버려서 남겨 놓는 것이 없었다.

 

한때 유럽까지를 휩쓸었던 그네들의 자랑스러운 선조, 친키스칸의 무덤조차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옛 수도였다는 하라호름은 한쪽의 불교 유적지 외에는 시가지의 흔적조차 없는 끝 없는 초원만이 펼쳐져 있었다.

잠시 머물었다가 아무 것도 훼손시키지 않고 다시 떠나는 유목민들의 삶에서 오늘 우리들의 너무 많이 갖고, 너무 많이 파괴하고, 너무 많이 변형시켜버린 문명을 되돌아 보았다.

세계적으로 공해가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역시 근대화의 과정 위에서 개발의 수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는걸 생각하면서 흘러가는 냇물에 직접 얼굴마져 씻는 걸 삼가던 그네들의 삶의 방법이 가슴 속을 싸아하니 퍮어 왔다.

나는 직장이 목포에 있어서 바닷물이 시가지로 넘쳐 들어 와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가끔 본다. 그런가하면 대포집에서도 서비스 안주로 내놓던 흔하던 세발낙지가 점차 씨가 말라 간다는 우울한 소식도 듣는다. 농토를 넓히기 위해 바다를 메우고, 둑을 쌓는 동안 바닷물은 갈 곳이 없어 밀물때면 사람들이 사는 집안까지 기어 들어오고, 개펄이 사라지면서 바다는 원래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늦가을에는 소설가 몇 사람과 쓰시마(對馬島)에 갔다가 이즈하라쵸(嚴原町) 시가지 곳곳에 보이던 옛 조선통신사절단의 행렬도 그림들이 그곳 이즈하라쵸 시냇물 다리 난간들에 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감회에 서렸던 것을 기억한다.

한때 조선에 조공을 바쳤던 시절 조선왕이 내린 하사품들을 국보로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 현장에서 그러나 내가 참으로 놀란 것은 그 좁은 시냇물의 청결성이었다.

시가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그 좁은 시냇물은 얼마나 하수처리가 잘 되었는지거울처럼 맑았고, 손바닥만큼씩한 바다 고기들이 다리 난간 아래까지 올라와 헤엄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섬의 80%를 찾이하고 있는 스기나무 원시림 앞에서는 괜스레 심술이 일었다. 물고기 조금이 잡힐 뿐 식량마져 두달분 밖에 생산이 안된다는 그 척박한 땅의 목재는 적당히 잘라내서 활용해도 될 듯 싶은데도 필요한 목재는 외국에서수입해 쓰는 것이 원칙이고, 그 원시림은 그대로 보존한다는 그네들 태도에서 골프장을 만든다고 산 허리 곳곳을 파헤쳐 놓은 조국의 산등성이를 생각했다.

 

우리의 국토는 우리만 머물다가 떠날 공간이 아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래 오래 뿌리 내리며 살아야 할 장소이고 영원히 보존되어야 할 땅이다.

우리 어린 시절 피래미 잡으러 뛰어 들고, 목이 마르면 두손으로 움켜 마시던 그 시골의 맑던 실개천은 이제 어디로 간 것인가.

호미 하나만 들고 나서면 먹거리를 잔뜩 채워올 수 있었던 어촌 사립문 밖 그 개펄은 어디로 간 것인가.

 

이제야말로 조금 멀리, 조금 넓게 세상을 보는 눈을 떠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멀리 보기, 넓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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