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자리 잡기
2. 탄피 이야기
3. 황구야, 안녕

 

<과수원집 아이>

 

잠자리 잡기

 

 내 친구들이 김영훈이라는 내 이름이 있는데도 ‘찍보’라고 언제부터 나를 불렀는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도 가끔 나를 그렇게 부르니까 친구들 중에 누가 그걸 듣고 그때부터 ‘찍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찍보’라고 불러도 기분이 상하고 그렇지는  않아요.  병태는 ‘먹보’, 홍만이를 ‘비실이’, 연이는 ‘울보’라고 부르는 것이나 같은 것이니까요.

 그날은 잠자리를 잡았어요.

 우리 집은 배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많은 과수원인데요. 해가 질 무렵이면 그 과수원 울타리의 마른나무 가지에 잠자리들이 수 십 마리씩 앉아 잠이 들거든요. 보통 잠자리 말고도, 몸이 세배나 큰 왕잠자리도 더러 있구요. 배에서 꼬리까지 새빨간 고추잠자리들도 있지요.

 이놈들을 낮에 잡으려면 보통 기술로는 힘이 들어요.

 나무 가지 끝에 앉았다하면 뒤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꼬리를 잡는 것이 제일 흔한 방법인데 잠자리들은 눈이 뒤에도 달렸어요.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잠자리는 작은 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뒤에 있는 것도 볼 수 있다고 그러셨어요.

 때로는 잠자리가 앉아 있는 바로 앞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 잠자리들이 정신이 없어져서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다가 잡히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잡은 암 잠자리 꼬리를 실로 묶어서 잠자리들이 여러 마리 날고 있는 공중에 날려주면 수컷 잠자리들이 암 잠자리에 엉켜들 때가 있어요. 그때 빠르게 그 수컷을 잡기도 하지만 역시 낮에는 잠자리 잡기가 쉬운 게 아니랍니다.

 하지만 해가 지려고 하면 잠자리들도 모두 잠을 자러 옵니다.

 우리 넓은 과수원 울타리의 마른나무 가지들이 잠자리들의 침실이지요.

 “오늘 100마리씩 잡기다.”

 내가 그날은 ‘먹보’ 병태하고, ‘비실이’홍만이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잠자리들이 잘 날아가지 않거든요. 저녁 이슬이 내리기 시작해서 날개가 축축해지면 더구나 움직이지 않구요. 하지만 보통 열 마리나 스무 마리는 쉽게 잡았어도 100마리씩을 잡기로 한 것은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제 각기 잠자리들이 자주 날아드는 장소로 옮겨가서 스무 마리 정도는 잡았을 거예요. 우선 엄지와 검지로 꼬리를 잡아서는 날개를 뒤로 젖혀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다시 오른 손 손가락으로 새로 잡고... 그래도 열 마리가 넘어가면 손가락 사이에 끼운 날개 부피가 많아져서 자칫하면 잡은 잠자리들이 빠져서 도망가기도 해요.

 그때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였지요. 처음에는 ‘영훈아. 영훈아....’ 그렇게 부르시더니, 내가 대답이 없자, 이제 ‘찍보야...얘...찍보야, 저녁 먹어라...’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시는 거였어요.       

 기어코 100마리를 잡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에 대답을 않고 있었는데, 우리 집 누렁이 ‘황구’를 뒤따라 온 엄마에게 결국 덜미를 잡혀 집으로 내려갔답니다.

 참 우리 집 누렁이 ‘황구’소개를 안 했습니다.

 내가 세 살 때 막 젖을 떼고 우리 집으로 왔다니까 나보다 세 살이 적은데도 벌써 여러 번 새끼를 낳은 어미 개랍니다.

 학교 가기 전까지는 친구들 보다 나는 황구하고 과수원 언덕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날이 더 많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아침이면 매일 나를 따라 뚝 길까지 갔다가 내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돌멩이를 여러 개 던져서 쫓아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내가 돌아올 때는 대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쫓아 나오지요. 내가 집에서 500m 쯤만 가까이 오면 어떻게 알고 마중을 나와요. 그리고는 껑충 앞발을 내 어깨에 올리고 긴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핥아댑니다. 그래요. 날이 맑은 날은 괜찮은데, 비가 온 뒤에는 흙을 잔뜩 묻힌 발을 어깨에 올리기 때문에 미리 돌멩이부터 준비해서 막 소리를 질러야 해요. 그때의 황구 눈이 슬퍼 보이지만 맨 날 옷을 버리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또 하나 얄미운 것은 오늘같이 엄마가 나를 ‘찍보야...’ 그렇게 부르면서 찾으실 때, 황구가 앞장을 서 엄마에게 내가 발각되게 하는 거예요. ‘너, 이따 혼 날 줄 알아..’ 주먹을 흔들면서 겁을 주어보아도 이 버릇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그날 집으로 내려와서 엄마가 친구들 앞에서 내 흉을 보시는 거였어요.

“저 애 영훈이가 왜 ‘찍보’ 가 된 줄 아니? 어렸을 때, 제 하고 싶은 짓을 못하게 하면 마루에고, 벽에고 머리를 찧어댔단다..... 잠자리도 몇 마리만 잡으면 되었지, 그걸 100마리 잡는다고 깜깜할 때까지 저러고 다니고 말이다...글세 한번은 마당에 있다가 머리 찧을 때가 없으니까, 마당에 박힌 돌멩이에다 머리를 찧어서 피가 났다니까...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날은 밥상에서 아버지가 된장국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것을 보고는 밥에 간장을 국처럼 모두 쏟아 붓는 걸 못하게 했더니 머리를 벽에 꽝꽝 찧어대었다는 것입니다.

 “너, 짜다고 하면 혼 날 줄 알아.”

어머니는 그렇게 다짐을 받고 간장에다 흥건하게 밥을 말고 있는 나를 흘겨보시고, 아버지는 숟가락을 놓고 나를 그냥 지켜보고만 계셨대요.

 “안 짜. 하나도 안 짜...맛있어...”

 간장에 흥건하게 말아버린 밥을 꾸역꾸역 먹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고개를 흔드시면서 한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저 애가 앞으로 뭐가 되든 되긴 될거야. 저 고집이면...”

    

 그 일이 있고 나서 친구들은 당연한 것처럼 우리 집 대문에서 나를 부를 때면 ‘영훈아...’ 대신에 ‘찍보야...’ 그렇게 불러댑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리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는지 몰라요.

 어두워진 뒤에 손톱 발톱을 깎아서는 안 된다, 또 동네 밖 성황당 곁을 지나갈 때는 반드시 돌멩이 한 개를 돌무덤 위에 얹어 놓고 가야하고, 뱀을 죽일 때는 꼬리 부분을 완전히 죽여야 다시 살아나서 장독대의 고추장이나 된장에 독을 푸는 해코지를 하지 않고, 어른들 신발을 넘어 다녀서는 안 되고……

 맨 날 그런 것이 너무 많았어요.

 시골에서는 어느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대문 앞에 새끼줄에 고추며, 숯, 소나무 가지들을 꿰어 걸어놓고 붉은 황토를 집 앞에 뿌려 놓고 하거든요. 거기를 지나갈 때도 그 황토 흙을 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또 지렁이 밭에 오줌을 누면 고추가 부어 올라서 큰일나니까 절대 안 되고, …… 그 안 되는 것 중의 한가지는 뱀 딸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산딸기와 들 딸기가 줄기와 넝쿨에 열리는 것과 다르게 물기 많은 습지에 유독 새빨간 색깔의 오돌오돌하게 한 개씩 열리는 그 뱀 딸기는 뱀과 입을 맞추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되는 열매였어요.

 실제로 뱀이 그 빨간 딸기를 먹거나 입을 맞추는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뱀 딸기가 있는 축축한 지역에는 뱀이 많았어요.

 한두 마리가 있기도 했지만 수십 마리가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 또래 심한 개구쟁이들도 그 엉켜있는 뱀들을 한꺼번에 때려죽일 용기는 거의 없었지 싶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밍밍하고 아무 맛도 없는 그 빨간 뱀 딸기를 여러 번 먹어본 적이 있어요. 비위가 돌 것 같은 그 이물거리는 맛 때문에 금방 뱉어 버리곤 하면서도, 혹시나 이번만은 기가 막힌 맛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나도 병태도, 홍만이도 곧잘 그 빨간 열매를 입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후회하면서 속눈썹 한 개씩을 뽑아서 바람에 날렸습니다.

 다른 마을에서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마을 아이들은 뱀 딸기를 먹은 사람은 반드시 속눈썹을 한 개를 뽑아 바람에 날려보내야 했습니다.

 지켜야 할 다른 일을 어겼을 때도 어김없이 속눈썹을 뽑아 손바닥에 놓고 그것을 입 바람으로 멀리멀리 날려보냈습니다.

 학교 시작 시간 때문에, 죽인 뱀 꼬리가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을 못하고 왔을 때도 그랬고, 진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보려고 성황당 돌무덤에 돌멩이를 얹지 않고 그냥 지나온 후에도 우리는 조금 있다가 겁이 나서 속눈썹을 뽑았어요.


 우리는 개울 둑길을 꽤 오래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개울은 저수지를 출발해서 꼬불꼬불하게 논둑 사이를 뚫고 그 초등학교가 있던 바닷가로 이어져 있어서, 우린 책보를 조금 느슨하게 어깨에다 메고는 그 개울 길을 매일매일 걸어다니며 신작로 위로 뿌옇게 구름 같던 먼지를 내고 다니는 자동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동차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트럭 위에 군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군용 트럭에 타고 있던 군인의 모자와 등에는 나뭇가지들이 꽂혀 있을 때가 많아서 먼지 속을 우쭐거리며 달려가는 나뭇가지들을 멀끔히 바라볼 때도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어른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어른들하고만 관계가 있었지 우리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언덕 풀숲 속이나 배나무 가지의 갈라진 사이에 둥우리를 만드는 뱁새 집에서 제 머리보다 더 크게 입을 노랗게 벌리는 새끼 새를 꺼내오고 했습니다.

 그 새끼 새에게 잠자리나 메뚜기를 먹이기도 하고, 개미집을 파 뒤집어 쌀알 모양의 개미 알들을 모아서 먹이기 위해서 뜨거운 여름 햇볕 속을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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